소통과 삶

왜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은 실패하기 쉬운가.

김남시 2006. 5. 23. 17:36

·         우리는 매일 일상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지만, 생각해보면 사람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고, 또 그에 근거해 사회 시스템이 움직여가고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도대체 커뮤니케이션이 작동한다는 것 자체는 원리적으로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니클라스 루만과 같은 이론가의 커뮤니케이션 이론이, 역설적이게도, 커뮤니케이션의 비개연성 Unwahrscheinlichkeit 에서 출발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커뮤니케이션은 원리적으로 제대로 작동될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다. 첫째로 서로 분리되어 있는 의식을 가지고 있는 개인들이 도대체 상대가 하는 말을 이해한다는 사실 자체가 그렇다. 그 말을 하는 자의 의식과 기억 속에서만 완전하게 이해될 수 있는 누군가의 메시지가 그와는 분리된 의식을 가지고 있는 타자에 의해 이해된다는 것은 원리적으로 비개연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두번째로 메시자가 수신자에게 도달할 가능성 역시 비개연적이다. 누군가의 메시자가 시간적, 공간적으로 규정된 구체적 상황 속의 사람들을 넘어, 그와는 다른 시, 공간적 맥락에 위치한 수신자에게까지 전달되고 도달한다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번째로, 위 두 비 개연성이 극복되었다 하더라도, 곧 누군가의 메시지가 발신자의 맥락을 넘어 수신자에게 도달하고 또 그에의해 이해되었다 하더라도, 수신자가 그 메시지를 수용함으로써 커뮤니케이션이 성공할 가능성도 매우 비개연적이다. 발신자의 메시지를 이해한 수신자는 그를 얼마든지 거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1]

 

·         루만에 따르면, , 문자, 그림, 표정, 제스쳐 등의 좁은 의미의 매체들 뿐만 아니라, 학문, 예술, 종교, 사랑, 법 등의 넓은 의미의 모든 커뮤니케이션 매체들은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의 비개연성을 최소화시킴으로써,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만 생겨나고 재생산되는 사회시스템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생겨난 것들이다. 한 매체가 더 이상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보장하지 못한다면, 그건 정체된 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시킬 새로운 매체에 의해 대체되며, 이것이 또한 시대에 따라 학문, 예술, 사랑, 종교, 법등이 새로운 의미론을 갖추게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         문자는, 커뮤니케이션의 두번째 비 개연성, 곧 메시지가 발신자의 맥락을 넘어 수신자에게 도달할 비 개연성을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매체다. 대면적 (vis a vis ) 커뮤니케이션의 주요 매체인 말이 그 말을 들을 수 있는 공간과 시간 내의 수신자들에게만 전달되는데 반해, 문자는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에 있는 수신자들에게까지 메시지가 도달하게 함으로써 커뮤니케이션의 범위를 획기적으로 확장시켰다. 또한 문자는 커뮤니케이션 참여자들을 대면적 커뮤니케이션에서의 구속적인 행위연관에서 분리시킴으로써 커뮤니케이션 자체에 대한 반성적, 비판적 태도를 가능케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문자의 장점은 다른한편 말을 통해 이루어지는 대면적 커뮤니케이션의 다른 장점들을 댓가로 지불한 결과이기도 하다.

 

·         첫째, 말을 통한 대면적 커뮤니케이션이 표정, 목소리, 제스쳐, 음성 등의 직접적, 육체적 지표들을 커뮤니케이션에 통합시킴으로써 상대의 메시지에 대한 이해 가능성을 높이는데 반해, 문자적 커뮤니케이션은 이를 차단시켰다. 한 언어적 진술의 의미는 그것의 명제적 내용 뿐 아니라 그것이 전달되는 방식에 의해서도 결정된다. 동일한 문장이라도 그를 어떤 음성, 목소리, 표정과 톤으로 말하는 가에 따라 그것의 메시지적 가치는 달라지는데 (로만 야콥슨은 이를 언어의 «감정적, 표현적 기능»[2]이라고 부른다.), 이런 표현적 차원의 전달 가능성을 차단시킴으로써 문자 커뮤니케이션에서 상대의 메시지는 명제적 내용으로만 축소된다. 문자 커뮤니케이션이 대면적 커뮤니케이션에 비해 더 많은 오해 가능성에 열려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         둘째, 대면적 커뮤니케이션이 발신자와 수신자가 처해있는 언어상황의 공유를 전제로 하고 있는데 반해, 문자 커뮤니케이션은 그것이 힘들다. «창문이 열려있어요»라는 진술은 그 말이 행해지는 구체적 언어상황에 따라, ‘문을 닫아달라는 요청일 수도, 그러니 담배를 피워도 된다는 요구일 수도, 창문을 닫지 않은 것에 대한 꾸중일 수도 있다. 이 중 무엇이 화자의 메시지인지는 이 대화가 이루어지는 구체적 언어상황에 대한 판단을 통해서만 결정될 수 있다. 문자 커뮤니케이션에서 글을 쓰는 자가 암묵적으로 전제하는 언어상황은, 그를 읽는 사람의 언어 상황과는 시, 공간적으로 동떨어져 있으며, 그로인해 발신자와 수신자가 동일한 언어상황을 공유할 가능성은 현저하게 삭감된다. 당연히 이는 문자적 커뮤니케이의 오해 가능성을 높인다. 

 

·         결론적으로 문자는 커뮤니케이션의 도달 범위를 시, 공간적으로 확장시키긴 했지만, 그 댓가로 커뮤니케이션의 이해가능성을 현저히 떨어뜨렸다. 따라서, 이러한 문자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선 대면적 커뮤니케이션 보다 더 많은 커뮤니케이션 참여자들의 의식적 노력이 요구된다. 예를들면 수신자는 쓰여진 문자 속에선 드러나지 않는 메시지 발신자의 표현적, 감정적 차원을 자기 나름대로 유추해야 하고, 나아가 글을 쓴 사람이 염두에 두고 있었을 가능한  언어상황을 사후적으로 고려해야한다.  

 

·         이런 특성으로 인해 인터넷이 등장하기 전까지, 문자 커뮤니케이션은 말을 통한 구어적 커뮤니케이션과는 다른 모드와 규칙에 의거해 이루어졌다. 책이나 편지 교환 등은 구어적 대화와는 달리 글을 쓰고 읽는 사람들에게 즉각적이고 즉흥적인 반응과 대답을 요구하지 않았고, 글을 쓰거나 읽을 때에도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투여하는 걸 가능케 했다. 글을 쓰는 사람은 그를 출판, 발표, 발송하기 까지 많은 시간을 두고 자신의 글을 다듬고 고쳤으며, 그를 읽는 사람 역시 즉자적 응답에 대한 부담없이 글쓴이의 메시지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를통해 문자의 제한된 이해 가능성은 실제의 문자 커뮤니케이션에서 그렇게 큰 문제로 등장하지 않을 수 있었다.

 

·         신문은 이러한 문자 커뮤니케이션을 구어적 커뮤니케이션의 모드로 강제하게 했던 첫번째 매체였다. « 글을 읽는 자들의 성급함 Ungeduld 에 매일 매일 새로운 양분을 제공 »[3] 해 주어야 하는 신문은, 그때 그때의 사건과 소식들을 빠른 시간에, 곧바로 문자로 기록해 전달해야 했으며, 그를통해 문자적 커뮤니케이션은 즉각적이고 즉흥적인 반응을 기대하는 구어적 커뮤니케이션의 모드로 변해가게 했다.    

 

·         문자를 커뮤니케이션의 중심 매체로 일반화시킨 인터넷은, 그러나 문자적 커뮤니케이션의 모드를 구어적 커뮤니케이션의 모드로 강제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타이핑을 통한 글쓰기는 펜을 통해 글을 쓸 때의 시간을 현저하게 축소시킴으로써 문자를 말의 모드로 변화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채팅에서 문자는 구어적 커뮤니케이션에서의 말처럼 즉자적이고 즉각적으로 상대의 메시지에 응답하기 위해 사용되고, 이를통해 문자 언어는 구어의 형식을 띄게된다. 이메일을 통해 전달되는 메시지는 이전 시대 편지에서처럼 시간을 두고 쓰여지고 다듬어지기보다는 즉각적으로 교환되어야 하는 정보로 변한다. 인터넷 게시판의 글쓰기 또한, 즉각적이고 actual한 정보교환의 특성을 통해 이루어진다. 한 편의 글은, 오랜 시간을 거쳐 읽혀지기 보다는 매시간 새롭게 등장하는 다른 글에 의해 즉각적으로 갱신되어 밀려난다.

 

·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이 문자라는 매체를 구어적 커뮤니케이션의 모드로 활용함으로써, 이전시대 문자적 커뮤니케이션에선 부각되지 않던 커뮤니케이션을 둘러싼 이해와 충돌의 문제가 본격화된다. 즉각적이고 즉흥적인 반응을 요구하는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의 특성은 쓰여진 문자 속에는 드러나지 않는 메시지의 표현적 기능과 글쓴이의 언어상황을 고려하기 힘들게 만들고, 글을 쓰는 자 역시 자신의 « 문자 »가 불러일으킬 수 있는 오해의 가능성을 고려해 글을 다듬고 고치기 보다는 즉각적이고 즉흥적으로 상대의 문자에 « 반응 »하도록 강제된다. 이모티콘 등을 통해 문자에 결핍되어 있는 메시지의 표현적 기능을 보완하려 하는 시도는 지극히 제한적으로만 성공할 뿐이다.

 

·         문자를 구어적 커뮤니케이션의 모드로 사용하는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은, 나아가 사적 글쓰기와 공적 글쓰기의 경계를 허물어버렸다. 원리적으로 모두가 그 글에 접근 가능하다는 점에서 공적일 수 밖에 없는 인터넷의 글은, 그러나, 글쓰는 이에겐 공적인 글을 쓴다는 의식을 전혀 불러 일으키지 않는다. 출판하고, 우표를 붙여 발송하는 등 글의 공공화과정이 생략된 인터넷 글쓰기에선 사람들은 일기를 쓰듯 인터넷에 글을 올리며, 다른 사람에 의해 쓰여진 글을 타인의 일기를 훔쳐보듯 읽는다. 인터넷에 발표된 사적인 감정과 생각은 그 발표된 장의 공공적 성격과 모순적으로 결합해 있다. 정치,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에 관한 경우 저 사적 생각과 그것의 공공적 발표가 갖는 모순은 극에 달한다. 인터넷에 발표된 자신의 사적인글이 공공적 논란이 될 때 사람들이 느끼는 혼란은 여기서 기인한다.

 

·         인터넷은 이전 시대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을 탄생시켰지만, 아직 그에 적합한 새로운 매체는 생겨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 이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성격과 원리적으로 걸맞지 않는 이전 시대의 매체 문자를 사용해야 한다. 이 오래된 매체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충돌에서 생겨나는 문제와 갈등들은 이를 극복할 새로운 매체가 출현해야만 비로소 해결될 것이다. 그전까지 우리는 저 충돌과 오해들을 조심스럽게 피해가거나 감수할 수 밖에 없다.       

 

 


[1] Niklas Luhmann : Die Unwahrscheinlichkeit der Kommunikation, in Aufsätze und Reden, S. 78-79.

[2] Roman Jakobson : Linguistik und Poetik, in Poetik. Ausgewählte Aufsätze 1921-1971, S.89.

[3] Walter Benjamin : Die Zeitung, GS II.2, S.628-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