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적 인간

찹살떡 장수와 브라암스 교향곡 4번

김남시 2006. 2. 26. 05:09

 

가을밤, 혼자 방안에 앉아 어줍잖은 멜랑코리에 젖어들 때면 간혹 들리던 찹살떡 장수의

 

외침 소리가 있었다.  "찹사알- 떡, 메미일- 묵...".  저 멀리 어디선가 들려오던 그

 

어코스틱 목소리가 서늘한 가을 공기를 타고 지랄탄 연기처럼 골목 구석 구석을

 

날아 들어오면, 난 뒷편 언덕에 서서 담배를 피며 교투를 구경하던 신입생처럼

 

어떤 서늘한 긴장감을 느끼곤 했다.

 

 

"찹사알 떡"을 외치는 저 소리는, 저 늦은밤의 찹살떡이 전화 한통화로 배달되는

 

24시간 야식으로 바뀌고 나서도, 여전히 내 귓속에 남아있었다. 그 소리는,

 

아직 물건의 사용가치가 메이커의 교환가치로 바뀌기 이전의 상품 광고의 원시적 형태를

 

체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 그건 아직 "흥남상회", "광풍 정육점 ", "장모님 치킨"이라는

 

간판들이 생기기 전에, "쌀", "돼지고기", "통닭" 이라는 물건 이름만을 매달고 있었던

 

작은 동네 가게들을 생각나게 한다. -  '찹. 살. 떠. 억' 이라는 음절들이 만들어내는

 

그 특유의 '음정'을 통해 우리의 음악적 감성을 자극하기도 하는 것이었다.

 

 

왜 저 소리가, 이렇게 서늘한 밤이면 또다시 귓가에 되살아날 정도로 깊이 남아있는 것일까를

 

생각하다 저 음절들 간의 음정을 분석해 보았는데, 놀랍게도 그건 "단 3도"로 이루어져 있었다.

 

다장조의 쉬운 음계로 이야기 하자면 "찹, 살" 이라는 두 음절은 C 음을, 그리고 이어지는 "떠 억"

 

이라는 두 음절은 E 플랫, 그러니까 E에서 반음 내린 음에 해당된다.

 

 

일반적인 "도-미-솔" 에서의 '도-미'의 사이가 '장3도'로 이루어져 있다면, 그보다 반음이 낮은

 

단3 도의 음정은 화성적으로 훨씬 더 풍부하고 깊은 울림을 갖는데, 이로인해 이 음정은

 

많은 우리 기억에 오래 남아있는 음악들에 자주 등장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유명한 브라암스의 4번 교향곡 1악장의 주제다.

 

이 유명한 주제는, "찹사알 떡" 의 외침이 단 3도로 상승한다면, 그와는 반대로 단 3도 하강이라는

 

차이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반복적으로 이 단 3도 음정을 - 거기다 klein Sexten (단 6도) 상승을

 

결합해 - 사용함으로써 한 번만 들어도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

 

울림을 만들어내고 있다. 

 

 

http://w3.rz-berlin.mpg.de/cmp/brahms_sym4_1.wav

 

 

저 찹살떡 장수들이, 멋진 울림을 만들어내기 위해  의식적으로 '단3도' 음정을 

 

연습했을리는 없을테니,  아마 저 소리는 전승되고 구전되는 동안 무의식적으로

 

사람의 귀에 깊고도 오래남는 단 3도의 음정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런 무의식적, 무의지적, 자연 발생적인, 그러나 화성학적 근거를 갖는

 

저 찹살떡 소리를 내 귀에서 울리게 하는

 

이유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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