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적 인간

늙어버린 나에게

김남시 2007. 5. 20. 18:42

 

는 네 늙은 피부 속에 갇히게 될꺼야. 너가 무슨 생각을 하건, 어떤 삶의 계획을 가지고 있건, 너의 추한 피부는 널 이 세상의 주변부로 몰아내지. 너의 늙은 육체는,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모든 불쾌한 연상들과 함께, 너를 피곤한 퇴근길 지하철 자리만 축내는 성가신 노인으로 만들어 버리니까. 아직도 네게 남아있는 이루지 못한 꿈들은 널 부추키겠지만 널 가두고 있는 낡은 육체는 그를 너무도 쉽게 진압해버리지. 네가 꿈꾸었던 것, 네가 이루고자 했던 것들은 그렇게 너의 늙은 육체 속에서 바둥거리다 잦아들고 말꺼야. 넌 네 얼굴의 주름과 흰 머리카락이 다만 너의 껍질에 불과하다고, 그 속엔 여전히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아름다운 것에 대한 열정과 지금보다 더 나은 것에 대한 갈망이 남아있다고 말하겠지만, 널 감싸고 있던 주름살과 흰 머리카락은 점점 너의 뼈와 심장에로까지 스며들어 널, 지금까지 어떤 인간도 이겨보지 못한 시간에 굴복하게 만들지.


너의 지금까지의 삶은, 이젠 그 누구도 듣고 싶어하지 않는 과거의 기억들로 퇴적해, 도대체 언제 그리고 어떤 모습으로 널 찾아올지도 모를 죽음을 기다리는 네 지금의 삶의 유일한 위안이 될꺼야. 너의 기억은 네게, 내겐 다만 늙음만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어서 빨리 자라기를 바랬던 어린 시절도, 사랑과 혁명에 시퍼렇게 밤을 새웠던 젊음도 존재했었다고 말해줄테니까. 그렇게 너는, 말년의 키케로처럼, 난 저 젊은이들이 아직 가지지 못한 이 모든 것들을 가지고 있다고, 난 저들의 열정이 만들어내는 불안과 고통, 방황 대신에, 남아있는 미래가 없음으로 인해 생겨나는 안정과 편안함을 얻었다고 자위하겠지.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동안에도 넌 네 존재가 맞닥뜨리고 있는 근원적 불안 속에서 너의 허약해진 심장이 보이지 않게 떨리고 있는 걸 느낄꺼야. 젊은이들의 불안이 그들에게 남아있는 미지의 삶의 시간에 대한 기대에서 연유한다면, 너의 그것은 널 찾아올 것이 너무도 확실해진 죽음에 대해 네가 알고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데에서 기인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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