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하지 말아야 할것'앞에서 아이는 주저함이 없다. 그건 아이에게 아직 그러한 구분을 하게 해주는 인식론적 범주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위험함과 안전함, 깨끗하고 더러움, 타인을 아프게 할 수있는 행위와 그렇지 않은 행위를 구분하게 해주는 어떤 척도도 지니지 못한 아이에게, 세상은 그저 무차별적이고, 동일한, 온통 만져보고, 입에 넣어보고, 매달리고, 올라가고, 두둘기며, 휘둘러볼 수많은 물건들로 가득차있다.
식탁 위에 떨어져있는 밥풀과 바닥에 떨어진 그것을 아이는 '깨끗함'의 정도에 따라 구별할줄 모르며, 전기 장판의 온기와 오븐의 뜨거움을 '인간에게 위험함'의 척도에 따라 인식할수 없다. 아이에겐 모든 것들이 그저 일차적이고 개별적인 경험의 대상들인 것이다.
위험함의 정도, 깨끗함의 정도, 나아가 허가될만하고 그렇지 못할만한 것들을 구별하기 위해서 녀석은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인식적 범주를 스스로 만들어 내어야만 한다. 그런데, 그것은 어떻게 형성될 수 있을까?
아이가 세상의 모든 것들을 일단 모두 한번씩 경험해 본후에야 그 체험의 기억에 따라 세상의 모든 것들을 보편적 범주에 따라 구분할 수 있다는 생각엔 저 유명한 '귀납주의'의 오류가 적용된다. 아이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경험해 볼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래서도 안된다. 오븐이 위험하다는 걸 알기위해 반드시 오븐에 손을 데어볼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아이는 녀석이 처음으로 접해보는 사물들에 무턱대고 손을대고, 입에 넣기 전에 그들을 저 '안전함'의 보편적 척도에 따라 구분할줄 알아야만 한다. 그 보편적 척도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추측컨대, 인간에겐 모든 것들을 다 경험해보지 않고도, 그들의 보편성을 유추해낼수 있는 추상능력이 있다. 그렇기에 녀석은 뜨거운 국물에 한번 손을 데어보고는, 그와 유사한 뜨거운 밥이나 뜨거운 감자에도 덥석 손과 입을 대지 않을 방어기제를 만들어낸다. 그는 추상을 통해, 세상의 모든 사물을 일일이 경험해 보지 않고서도, 보편 범주하에 귀속시킬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배워가는 과정에서도 이러한 능력이 발견된다.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서는 안되는 것'을 아이는 자신의 그 행위를 대하는 부모의 태도로부터 감지한다. 예를들어, 지금 이 글을 쓰고있는 내게 연필을 빼앗아 입에넣으려는 아이는, 나의 찡그린 표정과 제스쳐 등을 통해 그 행동이 '허락되지 않는것'임을 알아차린다. 반면, 녀석이 그 연필을 들고 내 공책위에 낙서하기를 시작했을때 난 그것은 '용인될수 있는 것'임을 표현하며, 녀석은 그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그 경계가 분명한 다른 범주들, '위험함/안전함', '깨끗함/더러움' 등과는 달리 '해서는 안되는것/해도 괜찮은 것'의 범주는 아이가 습득하고 적용하기가 더 힘들다. 왜냐하면 저 넓은 의미의 윤리적 척도는 상황과 맥락, 때와 장소에 따라 달리 적용될수 있으며, 그런 점에서 상대적이고 유동적이기 때문이다.
모든 상황과 모든 때와 장소에 맞추어 저 윤리적 기준을 적용할수 있는 능력을 얻기위해 아이는 상대적으로 보다 많은 사례들을 체험해 보아야 할터이고, 그를 통해 '개방적이면서도 무원칙적이지는 않는' 어떤 '보편적 윤리적 원리'를 체득해야 할 것이다.
위험함과 안전함, 깨끗하고 더러움, 타인을 아프게 할 수있는 행위와 그렇지 않은 행위를 구분하게 해주는 어떤 척도도 지니지 못한 아이에게, 세상은 그저 무차별적이고, 동일한, 온통 만져보고, 입에 넣어보고, 매달리고, 올라가고, 두둘기며, 휘둘러볼 수많은 물건들로 가득차있다.
식탁 위에 떨어져있는 밥풀과 바닥에 떨어진 그것을 아이는 '깨끗함'의 정도에 따라 구별할줄 모르며, 전기 장판의 온기와 오븐의 뜨거움을 '인간에게 위험함'의 척도에 따라 인식할수 없다. 아이에겐 모든 것들이 그저 일차적이고 개별적인 경험의 대상들인 것이다.
위험함의 정도, 깨끗함의 정도, 나아가 허가될만하고 그렇지 못할만한 것들을 구별하기 위해서 녀석은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인식적 범주를 스스로 만들어 내어야만 한다. 그런데, 그것은 어떻게 형성될 수 있을까?
아이가 세상의 모든 것들을 일단 모두 한번씩 경험해 본후에야 그 체험의 기억에 따라 세상의 모든 것들을 보편적 범주에 따라 구분할 수 있다는 생각엔 저 유명한 '귀납주의'의 오류가 적용된다. 아이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경험해 볼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래서도 안된다. 오븐이 위험하다는 걸 알기위해 반드시 오븐에 손을 데어볼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아이는 녀석이 처음으로 접해보는 사물들에 무턱대고 손을대고, 입에 넣기 전에 그들을 저 '안전함'의 보편적 척도에 따라 구분할줄 알아야만 한다. 그 보편적 척도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추측컨대, 인간에겐 모든 것들을 다 경험해보지 않고도, 그들의 보편성을 유추해낼수 있는 추상능력이 있다. 그렇기에 녀석은 뜨거운 국물에 한번 손을 데어보고는, 그와 유사한 뜨거운 밥이나 뜨거운 감자에도 덥석 손과 입을 대지 않을 방어기제를 만들어낸다. 그는 추상을 통해, 세상의 모든 사물을 일일이 경험해 보지 않고서도, 보편 범주하에 귀속시킬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배워가는 과정에서도 이러한 능력이 발견된다.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서는 안되는 것'을 아이는 자신의 그 행위를 대하는 부모의 태도로부터 감지한다. 예를들어, 지금 이 글을 쓰고있는 내게 연필을 빼앗아 입에넣으려는 아이는, 나의 찡그린 표정과 제스쳐 등을 통해 그 행동이 '허락되지 않는것'임을 알아차린다. 반면, 녀석이 그 연필을 들고 내 공책위에 낙서하기를 시작했을때 난 그것은 '용인될수 있는 것'임을 표현하며, 녀석은 그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그 경계가 분명한 다른 범주들, '위험함/안전함', '깨끗함/더러움' 등과는 달리 '해서는 안되는것/해도 괜찮은 것'의 범주는 아이가 습득하고 적용하기가 더 힘들다. 왜냐하면 저 넓은 의미의 윤리적 척도는 상황과 맥락, 때와 장소에 따라 달리 적용될수 있으며, 그런 점에서 상대적이고 유동적이기 때문이다.
모든 상황과 모든 때와 장소에 맞추어 저 윤리적 기준을 적용할수 있는 능력을 얻기위해 아이는 상대적으로 보다 많은 사례들을 체험해 보아야 할터이고, 그를 통해 '개방적이면서도 무원칙적이지는 않는' 어떤 '보편적 윤리적 원리'를 체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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