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저자 얀 필립 림츠마 Jan Philipp Reemtsma는 함부르크 출신의 사회학자이자 문학 연구가다. 그는 "함부르크 사회 연구소 Hamburger Institut für Sozialforschung"를 창립하였고 그 소장을 맡고있다. 2007년까지 함부르크 대학 교수로 독일 현대 문학을 가르쳤으며 2009년 부터는 예나 대학 „Laboratorium Aufklärung“ 프로젝트의 연구 교수이기도 하다. 그런데 1998년 출간된 그의 책 <지하실에서 Im Keller>는 학자이자 교수로서의 그의 이러한 견실한 경력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그 개인에게 일어난, 하지만 독일 전역을 떠들썩하게 했던 한 사건과 관련되어 있다. 그 사건은 1996년 3월 25일 저녁 그가 함부르크에 있는 자신의 집 앞에서 괴한들에게 납치됨으로써 시작된다. 도대체 누가, 왜 이 대학교수를 납치했던 것일까?
림츠마 교수는 큰 부자였다. 담배회사 - "림츠마"라는 이름으로 - 를 설립해 큰 돈을 벌었던 사업가 부친으로부터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함부르크 사회연구소', 나아가 "아르노 슈미트 Arno Schmidt 재단'을 설립할 수 있었던 것도 다 이 유산 덕분이었다. 그리고 이는 알만한 사람들에겐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납치범들이 노렸던 것은 그의 재산이었다. 오래전부터 범행을 계획하던 그들은 당일 림츠마 교수가 서재로 사용하던 자택 부근의 두번째 집에 침입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림츠마 교수는, 아마 저녁 때 포도주를 마신 술기운 때문에, 복면을 쓰고 나타난 이들에게 저항하였다. 그러다 코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하고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채, 눈과 입이 가려지고 수갑이 채워져 승합차 짐짝에 실린다. 납치범들이 데리고 온 곳은 하얀색 페인트로 칠해지고 천정엔 백열 전구 하나만 매달린 어느 지하실이었다. 거기엔 탁자와 의자 하나, 매트리스, 그리고 하얀색 라지에이터가 전부였다.
그 해 4월 26일, 독일 납치 역사상 최고의 석방금 액수인 3억 마르크가 '성공적으로' 전달된 후 풀려날 때까지 33일 동안 림츠마 교수는 그 지하실에 감금되어 있었다. 창문이 없던 그 곳에서 그는 오른쪽 발목에 족쇄를 차고 있었다. 캠핑 차에서 사용하는 이동식 변기에서 용변을 보고, 인질범들이 하루에 한번씩 갈아주던 양동이의 물로 세면을 하며, 하루 두번 그들이 가져다 주는 식사 - 빵, 냉동 식품 스파게티, 수프 등 - 로 끼니를 때웠다.
<지하실에서>는 림츠마 교수가 인질범으로서 겪었던 이 체험 이야기이다. 이 책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오래 전이었지만 정작 책을 읽어본 건 지금이 처음이다. 주문한 다른 책들과 함께 며칠 전에 도착한 이 책을 토요일 오전에 펴들었는데, 그날 밤을 거의 새다시피 해 일요일 오전 마지막 페이지를 읽을 때까지 손에서 놓지 못했다. 이는 이러한 종류의 이야기가 주는 선정적 자극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미 납치되기 전부터 문학가이자 에세이스트로 이름을 날리던 림츠마 교수가 이 책에서 제기하고 있는 물음과 생각에 매료되었던 탓이다.
납치된다는 것, 누군가에 의해 폭력적으로 지금까지의 삶의 일상에서 탈각된다는 것, 그건 사실 아무나 - 누가 나를, 어떤 이유로 납치할 것인가! - 겪을 수 있는 것은 아닐터이다. 하지만, 그로인해 생겨나게 된 상황은, 우리가 좀처럼 인지할 수 없었던 삶의 여러 문제들을 생각하게 한다. 무엇보다 그 상황은 과연 우리의 삶이 얼마나 우리 자신의 의지와 자유에 의해 이끌어지고 있는지, 정말 우리는 우리 삶의 주체이기는 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증폭시킨다. 그건 예를들어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다.
납치 사건의 인질은 과연 어디까지 '피해자'인가? 어느 순간부터 그는 어떤 점에서 그 납치극의 공모자가 되는 것은 아닐까? 그가 자신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가족들에게 편지를 쓰는 순간, 그 편지에서 자신이 느끼는 불안과 고통을 이야기하는 순간, 인질범에게 석방금 협상을 벌일 사람들의 이름과 연락처를 알려주는 순간, 인질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이미 그 납치 범죄에 '능동적 행위자 Actor'가, 인질범과 함께 그 범죄의 성공을 향해 나아가는 공모자가 되어 버린다. 가족들에게 자신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은 그가 죽었을지 모른다고 걱정하는 가족들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지만, 인질범에게는 가족을 협박하는 가장 큰 무기가 된다. 고통에 대한 호소 - '빨리 돈을 마련해 넘겨달라. 이 상황을 견디기 힘들다' - 는 인질범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족들이 행동하는 것을 촉진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질이 이렇게 공모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에겐 자신의 납치를 통해 생겨난 이 상황을 거부할 가능성이 주어져 있기는 한 것일까? 림츠마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납치된 사람은, 그 순간부터 자신의 운명을 타인의 손에 맡겨놓을 수 밖에 없는 수동적이고 객체적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고문당하는 사람 - 림츠마 교수는 쟝 아메리를 읽었다! - 이 고문자에게 협조하기를 거부함으로써 '의지를 가진 존재'로 자신을 주장할 수 있다면, 납치된 자에겐 그러한 가능성이 없다. 그에게는 도망갈 수 있는 어떤 곳도, 그를 참아내고 항거할 고문도 없기 때문이다. 다만 "돈과 교환될 객체"일 뿐인 그에게 주체로서의 어떤 역할을 수행할 가능성은 배제되어 있다. 그의 삶은 전적으로 그의 곁에 있는 납치범, 그리고 그가 결코 닿을 수 없는, 그가 어떤 영향력도 행사하기 힘든 그의 가족, 경찰, 언론에게만 의존되어 있다. 그 자신이 그의 삶/생명을 위해 행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자기 삶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이러한 절대적 수동성 속에서, 그의 생명이 의존되어 있는 저 '지하실 바깥' 세계의 사람들, 가족, 변호사, 경찰들에 대해 그는, 그래서 인질범과 비슷한 태도를 취하게 된다. 그는 아내가 돈을 마련하는데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 경찰이 자신을 살리는 것 보다 범인을 잡는데만 더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닌지, 왜 자기 변호사는 그렇게 어리석은 실수를 저지르는지 의심하고 비난한다.
이 끔찍한 지하실을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기를 원하는 그는, 자기 대신 그를 가능하게 해줄 지하실 바깥 세계 사람에게 기꺼이 '도덕적 테러'를 가하는 이기주의자가 된다. 그의 납치범이, 경찰의 조언을 따르던 아내와 변호사를 더 이상 신뢰하지 못해 다른 '믿을만한' 협상 상대자를 원했을때, 림츠마는 개인적 친분은 없지만 공적 관계로 알게 된 두 명의 이름을 언급하고 그들에게 '납치범에게 돈을 건네주기를 부탁하는' 편지를 썼다. 이때를 돌이켜 보면서 림츠마 교수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이는 비도덕적인 것이 아닐까? 납치범을 통해 림츠마의 편지를 받은 이들이 이 부탁을 거절할 수 있었을까? 그 자신의 생명을 위해, 그들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는 이 위험스러운 일을 타인에게 요구하는 건 도덕적으로 정당한 일이었을까?
사회학자이자 문학 연구가인 림츠마 교수는 소위 '스톡홀름 신드롬'으로 알려져있는 인질범과 인질 사이의 모순적 관계에 대해 특별히 주목한다. 그 자신이 그를 납치하고 감금한 인질범에게 그런 감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림츠마 교수는, 읽을 꺼리를 가져다 달라는 그의 요구에 신문, 잡지 뿐 아니라 책 - 슬로터다익의 '냉소적 이성비판'에 대한 논문집, 칼 야스퍼스의 '위대한 철학자들', 도스토예프스키의 단편, "20세기 연대기" 등 - 들을 사다주고, 가끔씩 그와 '대화'를 나누었던 인질범에 대해 '고마움'의 감정을 느낀다. 심지어 어떤 순간엔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족쇄를 채워 지하실에 감금하고, 가족을 불안에 빠뜨리게 한 바로 그 인질범에게 '위로를 받고 싶다'고 느끼기도 했다. 도대체 이 극도로 모순된 감정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저자에 의하면, 그건 이 상황이 초래한 극단적 권력관계에서 기인한다. 당장이라도 총을 쏘아 자신을 죽일 수도, 지하실에 내버려 둠으로써 굶겨 죽일 수도, 혹은 감금 조건을 훨씬 더 끔직하게 만들 수도 있는 인질범의 전능 Allmacht에 대해 인질은 완전한 무기력 Ohnmacht 상태로 특징지워진다. 자신은 전적으로 무력하고 타인이 자신에 대해 절대적 힘을 가지고 있기에, 그 상황에 있는 사람은 그 절대적 권력을 '인격화된 운명'으로 느낀다. 자신에게 실제로 무엇이든 행할 수 있는 그 인격화된 운명이 그 끔찍한 가능성을 행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있는 그는 마치, 끔찍한 불행을 모면한 사람이 하늘에 감사를 드리듯, 그 인격화된 운명에 대해 감사해 하는 것이다.(184-185)
지하실에 감금되어 있는 인질에게 인질범은 자신이 갇혀있는 좁은 곳의 외부로 통하는 유일한 실재이며, 그가 다다를 수 있는 곳에 있는 유일한 인간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에게 더 끔찍한 가능성을 모면하게 해 준 절대적 권력이자, 그에게 빛과 물, 그리고 음식을, 심지어 읽을꺼리까지 마련해 준 인격화된 운명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로 인질은 이 존재에게, 자신의 불안을, 고통과 외로움을, 텅빈 시간을 위로받고 싶어하는 것이다.
림츠마 교수를 납치했던 납치범, 지하실에 있는 림츠마 교수에게 책을 가져다 주고, 그와 '영어로' 이야기를 나누었던 "영국인", 토마스 드라흐 Thomas Drach 는 1998년 아르헨티나에서 체포되었다. 다른 세 명의 공범과 함께 석방금을 받은 후 그는 불가리아, 헝가리, 아르헨티나 등을 돌아다니며 부유한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그는 2001년 독일로 이송되어 법정에서 14년 형을 선고받고 현재 복역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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