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영화 2012

김남시 2010. 2. 12. 01:25

<2012>영화를 보았다. 그리고  지그문트 바우만의 <유동하는 공포> 읽는다. 그리고 나서 생각하니 영화는 지그문트 바우만이 이야기했던 현재의 상황에 대한 역설적 영화화로 읽힌다’.  바우만에 의하면 오늘날 우리가 살고있는 세계는 어디에서 우리에게 닥쳐올지 모르는 유동하는공포로 둘러싸여 있다. 우리는 타이타닉이 부닥쳐 침몰했던 수많은 빙산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는 것을 막연히, 그리고 바로 막연함으로 인해 더욱 공포스럽게 예감하지만, 그에대해 무엇인가 우릴 안심케하는 대책을 세우지 못한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것들이 바깥으로부터가 아니라 바로 우리 에서부터 꾸역꾸역 끓어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폭발 Explosion 아닌 내부붕괴 Implosion. 우린 그로부터 생겨나는 위험과 그것의 귀결을 개별적으로 예측할 수는 있지만 예측에 기반해 그를 막을 수는 없다. 우린 뭔가 우리 손으로 있는 일에 골몰함으로써, 우리가 도저히 없는 일을 떠올리며 절망하지 않는“ (26) 삶의 방식을 택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실제로 안전해지지는 않는다 것을 알고 있다.

 

영화 <2012>에서 인도의 과학자는 누구보다도 먼저 지구 내부의 핵의 온도가 급격히 상승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고, 그로부터 생겨날 있는 파국적 귀결을 예측하였다. 하지만 그도, 그리고 그를 알게되는 모든 다른 사람들도, 그러한 예측으로부터 우리가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너무도 알고있다. 지구와 충돌하려는 운석과는 달리 지구 내부 깊숙한 곳에서 오랫동안 끓고있던 지구의 , 그로부터 생겨나는 파국은 무엇으로도 막을 없다. 우린 그를 고스란히 감내해야만 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각국의 최고위 정치가들은 이러한 파국을 미리 예상하고, 그로부터 거대한 방주 프로젝트를 실시해왔다. 그들은 1인당 10 유러라는 막대한 비용을 지불한 민간부문의 자금을 동원해, 몇백명 많아봐야 몇천명만을 수용할 있는 방주를 제작하였다.

 

1명당 10 유러를 지불할 있는 슈퍼 부자들만 멸망하는 세계에서 목숨을 건질수 있다는 영화의 시나리오엔 패러디도, 역설도 없다. 그건, 어느새인가 우리 모두가 받아들이고 있는 현실 논리 그대로이다. 우린 정도 규모의 방주 프로젝트를 위해서는 돈많은 민간부문의 자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그리고 정도를 지불할 있을 사람들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 많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나아가 그렇게 돈을 지불한 사람들만 방주 티켓을 받을 있는 것이 정당하다는 사실을 깊이 받아들이고 있다. 결국 우리가 오늘도 아침부터 늦게까지 일하고, 준비하고, 분투하며 노력하는 우리 자신이 그런 지불능력 있는 개인 되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우리는 막연한 휴머니즘과 평등 대신에 경쟁과 적자 생존과 사회적 도태를 세상의 당연한 규칙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지 않는가.

 

 1인당 10 유로씩을 지불하고, 개인용 제트기로 중국에 모여든 사람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주에 타지 못했을 우리가 느꼈던 불편함은,  대통령의 딸과 연애를 벌이는 영화 주인공 과학자가 즉흥 연설을 통해 강조한 새로운 인류의 인도적 출발점 대한 우려 때문이 결코 아니었다. 그의 연설에 감동먹어 방주의 문을 개방할 것을 결정한 각국 정상들도, 결정에 안도의 숨을 내쉴수 있었던 우리들을 불편하게 했던 것은 그만큼 돈을 지불하고도 댓가를 받지 못함으로써 생겨날, 경제적 교환원리의 예외상황에 대한 불편함은 아니었을까. 그들이 결국 방주에 탑승하지 못하고 죽어갔더라도, 우리가 그들에게 어떤 인간적 동정을 느낄 있었을까? 그들이 거기까지 탈출해 오기전에 이미 수억명의 지구인들이 무너져내리는 땅과 덥쳐오는 해일에 목숨을 잃었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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