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적 인간

[스크랩] 시인과 총장-황지우를 기억하며

김남시 2009. 6. 5. 22:46

 

황지우를 <시인>으로 가졌던 우리세대는 행복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의 시를 읽는 동안 이 세상이 "삼천리 화려강산"의 거짓된, 꾸며진 허구임을 알았고 "갈대 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처럼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날아오르려는 엉덩이를 주춤하고 "주저 앉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너무 늦어버렸다. 우리의 "날개"는 겨드랑이에서 돋아나지 않을 뿐더러, 어쩌면 저 회벽색 콘크리트 바닥으로 한 몸뚱아리를 털썩 집어던지지 않고서는 날 수 없다는 것을....너무 늦게 알았다.

 

세상 밖을 꿈꾸지만 세상 안에서 살 수밖에 없다는 것...시인은 "끼룩"대고 "낄낄"대며 우리에게 가르쳐주었다.

우리는 끼룩대지도 낄낄대지도 못하면서, 좁고 습한 자취방을 전전하며, 어둡고 쓸쓸한 거리에다 토악질 해대면서 흰 새떼들이 되지 못한 채 새떼들을 흉내내곤 했다. 떠나고 싶지만 떠나지 못하는 세상을.....<베린 몸>으로 배회하곤 했다.

 


 

 

하지만 그러한 존재의 인식과 방황도 잠깐..... 대가리가 커가면서 역사를 주워듣고, 민중을 나불대면서, 때로는 사월의 푸르른 하늘에 대하여, 혹은 오월의 붉은 꽃들에 대하여, 가두에서 유월의 뜨거움을 감각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자랐다. 시인의 표현대로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山>

절망의 산,

대가리를 밀어버

린, 민둥산, 벌거숭이산

분노의산, 사랑의산, 침묵의

산, 함성의산, 증인의산, 죽음의산,

부활의산, 영생하는산, 생의산, 희생의

산, 숨가쁜산, 치밀어오르는산, 갈망하는

산, 꿈꾸는산, 꿈의산, 그러나 현실의산, 피의산,

피투성이산, 종교적인산, 아아너무나너무나 폭발적인

산, 힘든산, 힘센산, 일어나는산, 눈뜬산, 눈뜨는산, 새벽

의산, 희망의산, 모두모두절정을이루는평등의산, 평등한산, 대

지의산, 우리를감싸주는, 격하게, 넉넉하게, 우리를감싸주는어머니

 

 

 

어쩌면 우리가 날아오르고 가지려고 했던 저 푸른 하늘이 지상에서도 가능하지 않느냐는 생각을 가지면서...理想의 <세속화>가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을, 80년대 말에, 명제가 아닌 사실로 확인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나에게 황지우는 무엇보다도 그러한 종교가 존재하다면, <나무교>의  교주이자 성직자로 보였다. 고백하건대 나는 시인을 교주로 모시고 있는 <나무교>의 독실하고도 진지한, 아니 광적인 신도이다.  


    

<겨울 나무에서 봄나무에로>

 

나무는 자기 몸으로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자기 온몸으로 헐벗고

영하(零下) 십삼도(十三度)

영하(零下) 이십도(二十度) 지상(地上)에

온몸을 뿌리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나목(裸木)으로 서서

올리고 벌 받는 자세로 서서

아 벌 받은 몸으로, 벌 받는 목숨으로

기립(起立)하여,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혼(魂)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영하(零下)에서

영상(零上)으로 영상(零上) 오도(五度)

영상(零上) 십삼도(十三度) 지상(地上)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아, 마침내, 끝끝내

꽃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피는 나무이다

   

    

나는 교주의 나무에 대한 율법을 읽고 들으며, 온몸으로 애타고, 불타올라, 마침내 푸르른 잎사귀를 내뱉고 붉은 꽃을 틔우는 나무가 되고 싶었다. 때로는 古木처럼 등껍질 단단하게 메마르게 늙어가겠지만, 나무의 生이야말로 사람의 生의 궁극적 모델이 아니던가. 우리 모두 나무가 되자! 

 

 

시인은 마침내 우리에게, 이 세상 밖, 어디론가, 궁극적인 나무의 세계, 연꽃의 경지......로 우리를 안내하고 있었다.

 

 

 

 

게 눈 속에 연꽃은 없었다
普光의 거품인 양
눈곱 낀 눈으로
게가 뻐끔뻐끔 담배 연기를 피워올렸다
눈 속에 들어갈 수 없는 연꽃을
게는, 그러나, 볼 수 있었다

 

 

 

 

 

 

 

 

 

나무의 율법학자였던 그가 어느 시집의 後記에서  ‘華嚴’과 ‘다스 카피탈’을 포괄하는 세계관은 불가능하다...라고 실토했을 때, 나는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고 이에 동의했다.

 

카피탈의 세계에 대한 안티 테제로서 다스 카피탈도, 세상에 속한다는 것....... 결국 다스 카피탈과 화엄 <사이>에서 머뭇거리면서, 생득적으로 <끼인> 존재로서, 이 세상에 남겨질 수밖에 없다는 것.... 

 

 

하지만 우리세대에게 남겨진 이 세상은, 90년대 초중반 이후 누렸던 저 행복했던, 화려한 <상품미학>의 세상은, 다스 카피탈의 몰락과 함께 닥쳐온 '카피탈'의 승리의 전리품이 아닐까? 

 

 

어느덧 우리세대는, 부풀은 뱃가죽을 쓰다듬을 나이가 되었고, 화엄과도 거리가 멀고, 다스 카피탈은 식상하거나 낯설어버린, 그러나 찬란한, 카피탈의 세계에서, <살찐 소파>가 되어 있었다.

 

 

<살찐 소파에 대한 일기>

 

나는 아침에 일어나 이빨 닦고 세수하고 식탁에 앉았다.

(아니다, 사실은 아침에 늦게 일어나 식탁에 앉았더니

아내가 먼저 이 닦고 세수하고 와서 앉으라고 해서

나는 이빨 닦고 세수하고 와서 식탁에 앉았다.)

다시 데워서 뜨거워진 국이 내 앞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아침부터 길게 하품을 하였다.

소리를 내지 않고 하악을 이빠이 벌려서

눈이 흉하게 감기는 동물원 짐승처럼.

 

하루가 또 이렇게 나에게 왔다.

지겨운 식사. 그렇지만 밥을 먹으니까 밥이 먹고 싶어졌다.

그 짐승도 그랬을 것이다; 삶에 대한 상기. 그것에 의해

요즘 나는 살아 있다.

비참할 정도로 나는 편하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 이빨 닦고

세수하고, 식탁에 앉아서 아침밥 먹고,

물로 입 안을 헹구고, (이 사이에 낀 찌꺼기들을 양치질하듯

볼을 움직여 물로 헹구는 요란한 소리를 아내는 싫어했다.

내가 자꾸 비천해져간다고 주의를 주었다.)

나는 소파에 앉았다.

그러나, 소파!

'소파'하면 나는 '비누' 생각이 났다가 또 쓸데없이

'부드러움'이라는 형용사가 떠오르다가 '거품-의자'가 보인다.

의자같이 생긴, 젖통이 무지무지하게 큰 구석기시대의

이 다산성 여신상은 사실은 비닐로 된 가짜 가죽을 뒤집어쓰고 있는데

"오우 소파, 나의 어머니!" 나는 속으로 이렇게

영어식으로 말하면서, 그리고 양놈들이 하듯 어깨를 으쓱해 보이면서

소파에 앉았던 거디었다.

 

나는 오늘 아침 일어나 세수하고 밥 먹고 소파에 앉았다.

소파에 앉으면 거실이 번역극 무대 같다.

중앙에 가짜 가죽 소파 하나, 그 뒤엔 오전 9시를 가리키고 있는

괘종시계가 걸려 있고, 세잔풍 정물화 한 점, TV 세트,

창을 향한 행운목 한 그루, 그리고 폼으로 갖다놓고 읽지도 않은

카를 마르크스 『자본론』(모스크바, 프로그레스 출판사) 양장본 3권이

가로로 쓰러져 있는 서투른 서가와 끊임없이 부글거리는 수족관:

그렇지만 이 무대에서 번역될만한 비극은 없다.

다만 한 사나이가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고 밥 먹고 소파에 앉았다.

젊었을 적 사진으로는 못 알아보게 뚱뚱해진,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는,

최근엔 입에서 나쁜 냄새까지 난다고 아내에게 비난받은 바 있는

이 사나이가 멍하니 소파에 앉아, 마치 동물원 짐승이 그렇게 하듯이,

하품을 너무 길게 하고, 눈물이 난 눈을 두 번 깜, 빡, 깜, 빡하고 있을 때

무대 왼편(주방)에서 그의 아내가 등장했으며, 그녀가 소파에 걸터앉아

그의 턱을 쓰다듬어주면서 면도 좀 하라고 하자,

그가 아내를 껴안으면서 "엄마!"라고 불렀을 뿐이다

 

하마터면 피아니스트가 될 뻔했던 아내가 출장 레슨 나가기 전에

그에게 와서 나를 어루만져줄 때가 나는 좋다.

나는, 아내가, 소파에 앉아 있는 그의 머리카락을 커트해줄 때,

낮잠 자고 있는 그에게 가만히 다가와 나의 발톱을 잘라줄 때,

혹은 그를 자기 무릎에 눕혀놓고 내 귀지를 파줄 때, 좋다

아침마다 그에게 녹즙을 갖다주고, 입가에 묻은 초록색을 닦아주자

나는 그녀를 보면서 방그레 웃었다.

나는, 아내가 그를 일으켜주고 목욕시켜주고 나에게 밥도 떠먹여주고

똥도 받아주고, 했으면 좋겠다.

나는 그의 남은 생을, 그녀에게 몽땅 떠맡기고 싶다.

코로 숨만 쉴 뿐, 꼼짝도 않고 똥그란 눈으로 뭔가 간절히 바라고 있으면

그녀가 다 알아서 해주는 식물인간이고 싶다.

가끔 햇빛을 보고 싶어하므로 창문을 열어줄 필요만 있을 뿐,

동정할 수는 있어도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 이 행운목; 나는

이 병실에서 나가고 싶지 않다.

 

나는 오늘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고 밥 먹고 소파에 앉아서,

아내가 나갔기 때문에 하루종일 집에서 혼자 놀았다.

비계 덩어리인 구석기 시대 어머니상에 푸욱 파묻혀서

괘종시계가 내 여생을 사각사각 갉아먹는 소리를 조용히 들었다.

너무 많이 남아도는 나의 시간들이 누에 똥처럼 떨어졌지만

나는 수락했다, 이것도 삶이며

이제는 그것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걸.

사람이 희극이 되는 것처럼 견딜 수 없는 일이 있을까마는

그러므로 무위는 내가 이 나머지 삶을 견딜 수 있게 하는 격이랄까.

사람이 만화가 되어서는 아니 되기 때문에

비록 사나이 나이 사십 넘어서 "내가 헛, 살았다"는 깨달음이

아무리 비참하고 수치스럽다 할지라도, 격조 있게,

이 삶을 되물릴 길은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이것 인정하기 조금은 힘들지만

세상에 조금이라도 복수심을 갖고 있는 자들의 어쩔 수 없는 천함보다야

무위도식배가 낫지 않겠는가! 나는 소파에 앉아서 하루종일,

격조있게, 놀았다.

탄식하는 시계가 분침과 시침을 벌려

역광을 받는 공작새처럼 화사한 오후를 만들고,

내가 손대지 않는 시간을 뜯어먹은 누에가

다른 종류의 생을 예비하는 동안

수족관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내 얼굴에

횡으로 도열한 수마트라 두 마리, 열대어 화석처럼 박혀들어왔을 때

나는 내가 담겨있는 공기족관을 느꼈다.

거기서 나는 고기처럼 또 하품을 했고,

MBC 뉴스데스크에서는 前해군참모총장이 검찰청 앞에서

검은 라이방을 쓰고 사진 기자들에게 포즈를 취하는 거디었다.


내가 "오우 소파, 마마이야!" 외치면서 소파에서 벌떡 일어난 것은

아내가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녀는 무대 오른쪽에서 등장했다,

슈퍼마켓에 들렀는지 식료품 봉다리를 들고,)

나는 오늘, 밥 먹고 TV보고 잤다.

자기 전에 아내가 이 닦고 자라고 해서 이빨도 닦았다.

화장실 앞에서 前해군참모총장처럼 포즈를 취했더니

아내가 쓸쓸하게 웃었다는 것도 적어야겠다.

아 참, 오늘 날씨는 대체로 맑았고 서울과 중부 지방 낮 28도였다.

내가 안방 문을 열면 무대, 불이 꺼진다.

어둠 속에서 한 사나이가 외친다; "지금, 옥수수밭에 바람 지나가는 소리, 들리지?" 저 15층 아래 강;

밤에는 강이 긴 비닐띠처럼 스스로 광채를 낸다는 걸 이제야 알았어!

가련한 공기족들이여, 안녕, 빠이빠이!


  

 

사십이 되어, 남은 생의 반을 생각했을 때, <헛> 살았다는 결론이 주어졌을 때, 격조있는 소파의 삶이 무위도식배들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지나온 삶을 항변도 해보지만.... 어쩌면 환멸 비슷한....삶은 연극이야라고 외칠 용기가 과연 나에게 남아있는 것일까? 이 저주받을 70년대 생이여!


 

80년대 초반, 세상 어디에나 <시적인 것>이 있다고 외쳤던 시인이, 90년대 후반 이후, 조각과 연극과 사진으로 <사람과 사람사이의 신호>를 찾아 떠다닐 무렵, 나는, 그가 시를 버렸다고 생각했다. 


일상화법으로 말하자면, 그는 시를 쓰지 않았고, 고로 시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논법에 의하면, 그는 여전히 <시적인 것>을 <조각>하고, <드라마>화한 현실속에서 시를 발견하고, 시적인 <이미지>를 찍으면서 살았다. 고로 그는 여전히 <시인>으로 살았던 셈이다.







그런 그가 노무현 정부 시절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기획자로서, 집행자로서, 한마디로 말해서 <행정가>로서, 언론의 문화면에서 희끗해진, 그나마 몇가닥 남아있던 머리숱을 보이며,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었을 때.......  나는 <화엄>과 <다스 카피탈>, <소파> 사이의 삼각관계에 대해 혹은 <시적인 것>의 복수성과 다양성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민끝에,

나는 2000년대 이후 그의 행동반경을  <공적> <시토앵>으로서의 의무감이라고 결론지었다.

그것은 <자유>를 전제로 시를 쓰던 <사적> <시인>의 영역에서, <자유 제한>을 담보로 저당잡히면서까지 그가 나아간 길이었다. 


잔뜩 우측으로 사시가 들어간 눈에는 그의 행적들이 다스 카피탈의 문화적 실행자로 왼쪽으로 기울어져 보이겠

지만, 한예종의 <총장>직 수행은 <사적> <시인>으로서가 아니라 <공적> <시토앵>의 궤적의 연장선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은 세상 밖, 어딘가.... <화엄>의 세계로, 날아가지 못하기에,

 "각각 자기 자리에 주저앉아" 있기에는 너무나 찬란한 카피탈의 세상이기에,

<다스 카피탈>을 외치기에는 너무 늦었기에,

<살찐 소파>로 생을 마감하기에는 너무나 아쉬운 삶이기에,

 

그는 <시인>의 삶을 버리고 <총장>의 직무를 택한 것이리라.  


 

 

덧붙여

 

그의 한예종 총장직 사퇴는 <사적 시인>의 삶을 버리고, 마지막으로 택했던, <공적 시토앵>으로서의 삶을 박탈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것이 <화엄>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고, <다스 카피탈>의 불능성을 확인하는 그에게, 또 다시 <살찐 소파>로 격조있게 살아가라는 카피탈의 냉소인가?

돌아오라, <시인>이여! 우리 다시 <자유>를 꿈꾸자.

 

 

 


출처 : 비평고원(Critical Plateaux)
글쓴이 : lacan182 원글보기
메모 : 황지우에 대해, 한 시인의 삶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참 멋진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