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예전에 할머니가 옥상에 올려 놓았던
장독 같은 것이면 좋겠어.
네 속에서
내가 그 속에 순서도 없이 집어넣은 생각들이
그 위에 생각도 없이 끼얹어 놓은 인용문들이,
서로에게 절묘하게 녹아 들어가
구수한 냄새를 피우는 된장으로 숙성될 수 있는.
저 다른 언어의 낯선 이질감들을
깨끗이 털어 놓지못한
나의 거친 번역들도
숯덩이처럼 검은 내 삶의 파편들도
네 속에 묵혀두는 동안
입맛을 댕기는 간장으로 익어갈 수 있는.
그래서 내가
손가락으로 끄집어 낸 그것들이
구수하게 숙성되고 맛있게 익은 모습으로
내 눈 앞에
눈을 깜빡거리며 되돌아올 수 있다면.
내가 아니라
내 손에 묻은 자판의 기억들이
생각을 보이게 만들듯
내가 아니라
네 속에 묵혔던 시간들이
생각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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