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적 인간

내 컴퓨터 하드 디스크에게

김남시 2008. 7. 6. 02:05

네가

예전에 할머니가 옥상에 올려 놓았던

장독 같은 것이면 좋겠어.

 

속에서

내가 속에 순서도 없이 집어넣은 생각들이

위에 생각도 없이 끼얹어 놓은 인용문들이,

서로에게 절묘하게 녹아 들어가

구수한 냄새를 피우는 된장으로 숙성될 있는.

 

다른 언어의 낯선 이질감들을

깨끗이 털어 놓지못한

나의 거친 번역들도

숯덩이처럼 검은 삶의 파편들도

속에 묵혀두는 동안

입맛을 댕기는 간장으로 익어갈 있는.

 

그래서 내가

손가락으로 끄집어 그것들이

구수하게 숙성되고 맛있게 익은 모습으로

앞에

눈을 깜빡거리며 되돌아올 있다면.

 

내가 아니라

손에 묻은 자판의 기억들이

생각을 보이게 만들듯

내가 아니라

속에 묵혔던 시간들이

생각을 아름답게 만들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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