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찌가 권력을 잡고 반 유대주의가 위협적인 모습으로 성장해가자, 독일 출신 유대인 지식인들은 경제 기반을 챙기지 못한 채 다른 나라로 피신해야 했다.(일찌감치 연구소 재산을 미국에 옮겨 놓았던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거의 유일한 예외였다.) 낯선 땅에서 여기 저기 글을 '팔아' 받는 돈으로 근근이 먹고 살던 이들의 삶이 얼마나 위태로왔던 가를 우리는 당시 파리에 피신해있던 발터 벤야민의 경우를 통해 잘 알고 있다. 용케 미국 행에 성공했던 사람들에게도 망명자로서의 삶은 힘겨운 것이었다. 후설과 하이데거에게서 철학을 공부한 귄터 안더스는 그나마 운이 좋아 헐리우드 스튜디오에서 영화 의상/소품 관리자로 일할 수 있었다. 위 책엔 뉴욕에서 살던 그가 1947-1949 년 사이에 쓴 일기 중 그의 주관심 테마인 '인간의 느낌/감정'에 관련된 사유가 선별되어 실려있다. 그 사이 사이로, 자기들보다 쉽게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던 아내들의 경제력에 의존해 낯선 땅에서 '책을 읽고 글을쓰는 호사스러움'을 누리던 이 지식인들의 아이러니컬한 자기의식이, 언젠가는 고국으로 되돌아갈 것을 꿈꾸며 그 사회에 완전히 정착하지도, 아이를 낳지도 못하고 '잠정적인 삶'을 살아가던 이들의 삶의 흔적이 깔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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