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와서 처음 극장에 가 보게된 영화. 먼저, 영화제목에 대해 부연설명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적절한 한국말로의 번역어를 찾지못해 - 혹 이 영화가 그 사이에 한국에서도 개봉이 되었다면 어떤 제목이었는지, 아시는 분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 독일어 제목을 그대로 인용하나, 뜻을 풀이하자면, '그 누구 한명이라도 없어서는 안되는' 정도가 될 듯하다. 나 역시 이 간단한 독일어의 의미를 영화를 보고나서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배경은 현재의 중국. 유일한 1명의 늙은 남자 교사로 운영되는 한 시골 학교에 작은 문제가 생겼다. 그 교사가 어머니의 장례 때문에 자리를 비워야 했기 때문이다. 아무도 오려고 하지않는 험한 시골 학교에 임시 교사로 파견게된 여선생 '가' (이름이 기억 안나네.)는 자기가 가르쳐야 할 학생들보다 기껏해야 4-5살 더 먹은 13살짜리 소녀. 그녀는 글을 읽고 쓸줄 안다는 것과 유일하게 부를줄 아는 노래 하나로, 한달동안 학생들을 맡아 가르쳐야만 한다.
걱정스럽지만 어쩔수 없었던 노교사는 그녀에게 자신의 부재동안 가르쳐야 할 분량과 유념해야 할 것들을 일러주고 길을 떠난다. 해가 지기 전까지는 절대 아이들을 집에 돌려보내서는 안되며, 하루에 칠판 가득 분량의 글을 베껴쓰도록 할 것과, 특별히 신경써서 분필을 아껴쓸 것, 그리고, 자기가 돌아올 때까지 "한명의 학생이라도 부족해져서는(학교를 떠나게 해서는) 안된다"며 당부한다.
다음날부터 아이들을 관리해야 하는 어린선생. 아이들이 베껴써야할 글을 칠판 가득 필기하고는 교실 문밖에 나가앉아 아무도 해가질 때까지 교실을 떠나지 못하록 지키는 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유독 장난이 심해 어린 선생을 힘들게 하던 장난꾸러기 학생 하나가 어느날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병든 엄마와 혼자 어렵게 살고있던 그 아이는 더이상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돈을 벌기위해 도시로 떠났던 것이다. 이때부터 '부족해진 1명을 찾아오기 위한' 어린 여선생의 분투가 시작된다.
우여곡절 끝에 가까스로 마련한, 그렇지만 부족한 차비 때문에 버스에서 쫓겨난 그녀는 한참을 혼자 걸어가다 지나가던 트랙터를 얻어타고 드디어 난생 처음 혼잡한 도시에 도착한다. 도대체 이곳 어디에서, 어떻게 그 아이를 찾는단 말인가?
아이가 역에서 실종되게 된 것을 안 그녀는, 그를 찾는 방을 붙이기로 결심하고, 가지고 있던 모든 돈을 털어 종이와 붓, 먹물을 사, 역에서 밤을 새며 100여장의 방을 쓴다. 그러나, 그녀가 거리에서 지쳐 잠든든 사이 흩어져버린 방들은, 청소부들에 의해 쓰레기통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그래도, 좌절하지 않는 그녀.
사람을 찾으려면 테레비젼 방송을 하는게 제일 효과적이라는 지나가는 사람의 충고에 무작정 방송국을 찾아간 그녀는, 그러나 방송국 문 앞에서 '신분증명서'가 없다는 이유로 출입을 거부 당한다. 그러나, 역시 좌절하지 않은 그녀는, 그때부터 방송국 문 앞에서, 방송 책임자인 '나'씨를 만나기 위해, 오가는 모든 - 안경낀 - 남자들에게 '나'씨가 아니냐고 묻기 시작한다.
3-4일을 이러고 지내자 드디어 방송 책임자 '나'씨에게도 이 소식이 전해지고, 마침 중국에서의 교육문제를 다루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던 그는 이 어린 시골 여 선생의 일화를 프로그램화하기로 결심, 드디어, 그녀는 방송을 타게된다. 이를통해 그녀는, 한 음식점에서 일하던 자신의 학생을 만나게 됨은 물론, 그 방송을 본 사람들로부터 답지한 구호품과 선물들을 가지고 자신의 시골학교로 금의환향, 행복한 해피엔딩을 맞는다.
황당한 헐리우드의 '깜짝쇼'식 해피엔딩 - 영화 It happens to you 를 연상시키는 - 이 막판에 영화에 대한 이미지를 손상시키기는 했지만, - 이런 점에서라도 장이모 감독은, 자본주의적 번영을 사회주의적 이념과 타협시키려는 현재의 중국을 대표하는 감독이다. - 영화는 현재의 중국을, 그 과도기적 갈등을 잘 보여주고 있다.
말하자면, 그건 서로 다른 시스템, 서로 다른 가치가 한 시대와 한 사회에서 공존하게 될 때 일어날 수 있는 갈등이다. 작은 학교가 있는 시골 마을은 과거의 중국, 그러나 여전히 남아있는 가족 주의적, 혹은 인간적 -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 사회주의적 가치의 공간이다. 그 곳에선 아직도 전임 교사의 당부와 지시,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를 지키려 하는 의무감, 그리고, 소위 교환가치로서의 '객관적 능력'보다는, 교사를 할 수 있다는 의지등이 더 큰 역할을 차지하고하고 있다.
도시는 이와는 전혀 다른 가치와 체제를 요구한다. 도시로 가기 위해 그녀는 차비를 지불해야 하며, 지불한 만큼만 차를 탈 수 있다. 혼잡한 익명성의 공간에서 잃어버린 학생을 찾기위해, 그녀는 역시 돈을 주고, 그곳에 적합한 소통의 방식(방, 찌라시, 역 구내방송)을 채택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녀는 그 소통도방식에 여전히 익숙하지 못하다. 그녀는 그 방에 써넣을 전화번호도 갖고 있지 못하며, 방을 볼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도 알지못한다.
도시라는 익명과 자본주의의 영역 내에선, 우린 우리 자신을 그 체제가 요구하는 방식으로 '증명'해야 한다. 그녀는 자기가 잃어버린 학생을 찾고 있는 시골학교의 임시 교사임을 확신을 가지고 주장하지만, - 자기 자신 보다 더 확실한 나 자신,신분 증명이 어디있는가 - 그녀는 그를 증명해줄 어떤'증명서'도 가지고 있지 않다.
영화는 이 서로 어울리지 않는 두 체제가 어떻게 현재의 중국이라는 사회 속에서, 투덕거리며 공존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잃어버린 학생을 찾는 시골 여교사의 힘겨움을 통해 보여주려 하였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렇다면, 그녀의 힘겨움은 어떻게 극복될 수 있는가? 현재 중국이 안고 있는 어려움은 어떻게 해결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기분좋은' 타협의 길을 택한다. 방송이라는, 거대 자본을 통해서만 비로소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저 거대한 매체는, 아직 중국인들 사이에 남아있는 '애절한 시골 여교사에 대한 동정심 혹은 연민'을 효과적으로 촉발시킬 수 있으며, 그 사람들이 조금씩만 기꺼이 도와준다면 - 중국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사니까 - 모든 문제는 '마술처럼' 행복하게 해결될 것이다!라고...
어쩌면 이는 내가 이곳에서 만날 수 있는 대다수 중국 유학생들의 생각일지도 모른다. (물어보니, 장이모 감독은 중국에서도 굉장히 유명한 감독이라고 한다.) 우리에게 현재 필요한 것은, 중국의 수많은 인민들, 그리고 저 사회주의적 전통을 효과적으로 결합시켜낼 자본주의다라고...
적절한 한국말로의 번역어를 찾지못해 - 혹 이 영화가 그 사이에 한국에서도 개봉이 되었다면 어떤 제목이었는지, 아시는 분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 독일어 제목을 그대로 인용하나, 뜻을 풀이하자면, '그 누구 한명이라도 없어서는 안되는' 정도가 될 듯하다. 나 역시 이 간단한 독일어의 의미를 영화를 보고나서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배경은 현재의 중국. 유일한 1명의 늙은 남자 교사로 운영되는 한 시골 학교에 작은 문제가 생겼다. 그 교사가 어머니의 장례 때문에 자리를 비워야 했기 때문이다. 아무도 오려고 하지않는 험한 시골 학교에 임시 교사로 파견게된 여선생 '가' (이름이 기억 안나네.)는 자기가 가르쳐야 할 학생들보다 기껏해야 4-5살 더 먹은 13살짜리 소녀. 그녀는 글을 읽고 쓸줄 안다는 것과 유일하게 부를줄 아는 노래 하나로, 한달동안 학생들을 맡아 가르쳐야만 한다.
걱정스럽지만 어쩔수 없었던 노교사는 그녀에게 자신의 부재동안 가르쳐야 할 분량과 유념해야 할 것들을 일러주고 길을 떠난다. 해가 지기 전까지는 절대 아이들을 집에 돌려보내서는 안되며, 하루에 칠판 가득 분량의 글을 베껴쓰도록 할 것과, 특별히 신경써서 분필을 아껴쓸 것, 그리고, 자기가 돌아올 때까지 "한명의 학생이라도 부족해져서는(학교를 떠나게 해서는) 안된다"며 당부한다.
다음날부터 아이들을 관리해야 하는 어린선생. 아이들이 베껴써야할 글을 칠판 가득 필기하고는 교실 문밖에 나가앉아 아무도 해가질 때까지 교실을 떠나지 못하록 지키는 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유독 장난이 심해 어린 선생을 힘들게 하던 장난꾸러기 학생 하나가 어느날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병든 엄마와 혼자 어렵게 살고있던 그 아이는 더이상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돈을 벌기위해 도시로 떠났던 것이다. 이때부터 '부족해진 1명을 찾아오기 위한' 어린 여선생의 분투가 시작된다.
우여곡절 끝에 가까스로 마련한, 그렇지만 부족한 차비 때문에 버스에서 쫓겨난 그녀는 한참을 혼자 걸어가다 지나가던 트랙터를 얻어타고 드디어 난생 처음 혼잡한 도시에 도착한다. 도대체 이곳 어디에서, 어떻게 그 아이를 찾는단 말인가?
아이가 역에서 실종되게 된 것을 안 그녀는, 그를 찾는 방을 붙이기로 결심하고, 가지고 있던 모든 돈을 털어 종이와 붓, 먹물을 사, 역에서 밤을 새며 100여장의 방을 쓴다. 그러나, 그녀가 거리에서 지쳐 잠든든 사이 흩어져버린 방들은, 청소부들에 의해 쓰레기통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그래도, 좌절하지 않는 그녀.
사람을 찾으려면 테레비젼 방송을 하는게 제일 효과적이라는 지나가는 사람의 충고에 무작정 방송국을 찾아간 그녀는, 그러나 방송국 문 앞에서 '신분증명서'가 없다는 이유로 출입을 거부 당한다. 그러나, 역시 좌절하지 않은 그녀는, 그때부터 방송국 문 앞에서, 방송 책임자인 '나'씨를 만나기 위해, 오가는 모든 - 안경낀 - 남자들에게 '나'씨가 아니냐고 묻기 시작한다.
3-4일을 이러고 지내자 드디어 방송 책임자 '나'씨에게도 이 소식이 전해지고, 마침 중국에서의 교육문제를 다루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던 그는 이 어린 시골 여 선생의 일화를 프로그램화하기로 결심, 드디어, 그녀는 방송을 타게된다. 이를통해 그녀는, 한 음식점에서 일하던 자신의 학생을 만나게 됨은 물론, 그 방송을 본 사람들로부터 답지한 구호품과 선물들을 가지고 자신의 시골학교로 금의환향, 행복한 해피엔딩을 맞는다.
황당한 헐리우드의 '깜짝쇼'식 해피엔딩 - 영화 It happens to you 를 연상시키는 - 이 막판에 영화에 대한 이미지를 손상시키기는 했지만, - 이런 점에서라도 장이모 감독은, 자본주의적 번영을 사회주의적 이념과 타협시키려는 현재의 중국을 대표하는 감독이다. - 영화는 현재의 중국을, 그 과도기적 갈등을 잘 보여주고 있다.
말하자면, 그건 서로 다른 시스템, 서로 다른 가치가 한 시대와 한 사회에서 공존하게 될 때 일어날 수 있는 갈등이다. 작은 학교가 있는 시골 마을은 과거의 중국, 그러나 여전히 남아있는 가족 주의적, 혹은 인간적 -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 사회주의적 가치의 공간이다. 그 곳에선 아직도 전임 교사의 당부와 지시,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를 지키려 하는 의무감, 그리고, 소위 교환가치로서의 '객관적 능력'보다는, 교사를 할 수 있다는 의지등이 더 큰 역할을 차지하고하고 있다.
도시는 이와는 전혀 다른 가치와 체제를 요구한다. 도시로 가기 위해 그녀는 차비를 지불해야 하며, 지불한 만큼만 차를 탈 수 있다. 혼잡한 익명성의 공간에서 잃어버린 학생을 찾기위해, 그녀는 역시 돈을 주고, 그곳에 적합한 소통의 방식(방, 찌라시, 역 구내방송)을 채택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녀는 그 소통도방식에 여전히 익숙하지 못하다. 그녀는 그 방에 써넣을 전화번호도 갖고 있지 못하며, 방을 볼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도 알지못한다.
도시라는 익명과 자본주의의 영역 내에선, 우린 우리 자신을 그 체제가 요구하는 방식으로 '증명'해야 한다. 그녀는 자기가 잃어버린 학생을 찾고 있는 시골학교의 임시 교사임을 확신을 가지고 주장하지만, - 자기 자신 보다 더 확실한 나 자신,신분 증명이 어디있는가 - 그녀는 그를 증명해줄 어떤'증명서'도 가지고 있지 않다.
영화는 이 서로 어울리지 않는 두 체제가 어떻게 현재의 중국이라는 사회 속에서, 투덕거리며 공존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잃어버린 학생을 찾는 시골 여교사의 힘겨움을 통해 보여주려 하였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렇다면, 그녀의 힘겨움은 어떻게 극복될 수 있는가? 현재 중국이 안고 있는 어려움은 어떻게 해결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기분좋은' 타협의 길을 택한다. 방송이라는, 거대 자본을 통해서만 비로소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저 거대한 매체는, 아직 중국인들 사이에 남아있는 '애절한 시골 여교사에 대한 동정심 혹은 연민'을 효과적으로 촉발시킬 수 있으며, 그 사람들이 조금씩만 기꺼이 도와준다면 - 중국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사니까 - 모든 문제는 '마술처럼' 행복하게 해결될 것이다!라고...
어쩌면 이는 내가 이곳에서 만날 수 있는 대다수 중국 유학생들의 생각일지도 모른다. (물어보니, 장이모 감독은 중국에서도 굉장히 유명한 감독이라고 한다.) 우리에게 현재 필요한 것은, 중국의 수많은 인민들, 그리고 저 사회주의적 전통을 효과적으로 결합시켜낼 자본주의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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