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수 있는 세계

슈레버 관련 기사 두개. 문화일보와 한겨레 신문

김남시 2010. 7. 4. 15:57

출간된 슈레버 책 관련 문화일보와 한겨레 신문에 기사가 실렸다. 그대로 여기 카피해 놓는다.

 

 

<300자 책읽기>

정신병 환자, 자신을 기록하다

 

최영창기자 ycchoi@munhwa.com | 기사 게재 일자 : 2010-07-02 14:30

한 신경병자의 회상록 / 다니엘 파울 슈레버 지음, 김남시 옮김 / 자음과모음

책은 19세기 독일의 한 정신병자의 편집증적 세계관을 담은 자전적 에세이다. 1842년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나 폭군 기질을 가진 아버지의 혹독한 교육 아래서 자라난 저자는 드레스덴 고등법원 판사회의 의장을 역임할 정도의 엘리트였다. 그러나 켐니츠 지방법원장을 역임하던 1884년과 드레스덴 고등법원 판사회의 의장을 맡고 있던 1893년 두 차례에 걸쳐 정신병(강박증)이 발병해 치료소에 입원했다.

저자는 당시 신이 어떠한 음모로 자신을 공격하거나 여성화해서 임신시키려 한다고 생각하거나 자신이 음식을 흘리거나 말을 더듬거나 잠을 못 자거나 하는 것이 신의 계획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등의 증상을 보였다.

저자는 책에서 자신의 기록이 아직까지 논의되지 않았던 세계의 진리를 드러내는 등 학문적 연구대상으로 상당한 가치를 지닌다고 역설한다. 1903년 독일에서 처음 출간된 책은 저자가 죽은 해인 1912년 발표된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논문 ‘편집증자 슈레버-자전적 기록에 의한 정신분석’과 함께 정신분석학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텍스트로 평가된다.

최영창기자 yccho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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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망상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한 엘리트 판사의 명료한 증상 고백
20세기 정신분석학의 주요 텍스트
권력욕·억압·고통과의 ‘대결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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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신경병자의 회상록〉
〈한 신경병자의 회상록〉
다니엘 파울 슈레버 지음·김남시 옮김/자음과모음·2만7천원

다니엘 파울 슈레버(1842~1911·사진)가 쓴 <한 신경병자의 회상록>(1903)은 기이한 텍스트다. 극심한 편집증적 망상에 시달리던 환자가 자신의 신경병 증상 내용을 소상히 기록한 글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회상록은 글쓴이가 당시 독일의 최고급 엘리트 지식인이었다는 것, 극히 이성적이고 명료한 언어를 구사해 증상을 보고하고 있다는 것, 동시에 그 증상 내용이 전혀 합리적이지 못한 망상 덩어리라는 것 때문에 정신의학·정신분석학 분야에서 극히 희귀하고도 유용한 텍스트로 남았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비롯해 여러 학자들의 탐구욕을 자극했던 이 회상록이 처음 우리말로 번역됐다.

이 기록을 남긴 독일인 슈레버는 발병하기 전까지 판사로서 성공적인 경력을 쌓은 사람이었다. 1882년 가을 켐니츠의 지방법원장이었던 42살의 슈레버는 국가자유당 후보로 제국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하고 말았다. 그해 12월에 그에게 처음으로 정신병이 찾아들었다. 심한 건강염려증, 소리에 대한 과민반응 같은 증상을 보여 라이프치히대학 정신과에 입원했는데, 이듬해 6월에 완치돼 사회로 복귀했다. 그때 슈레버의 치료를 담당했던 사람이 파울 에밀 플레히지히 교수였다. 판사 생활을 계속하던 슈레버는 8년 뒤 1893년 드레스덴 고등법원 판사회의 의장으로 승진했는데, 직무 압박감에 시달리다 그해 10월 말 두번째로 발병했다. 첫 번째보다 훨씬 심했던 두번째 발병은 1902년까지 계속됐고 슈레버는 그 시기 말기에 이 회상록을 집필했다.

슈레버는 병세가 나아지지 않자 첫번째 발병 때 진료를 맡았던 플레히지히 교수에게로 가 한동안 치료를 받았다. 이 시기에 그의 망상은 점점 신비적이고 종교적인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슈레버는 자신이 여자로 변형된다는 망상에 시달렸는데, 나중에는 이 망상 속에서 신과 접촉해 새로운 종류의 인간을 낳을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이어 슈레버의 망상은 플레히지히 교수가 자신의 영혼을 살해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으며, 신이 그 음모에 가담하고 있다는 데까지 나아갔다. 그는 다른 병원으로 옮겨져 계속 치료를 받았으며, 회상록을 집필하던 1900년 무렵에는 자신의 증상을 스스로 기술할 수 있을 만큼 정상을 회복했다. 슈레버는 1903년 회상록을 출간한 뒤 가정으로 돌아와 비교적 안온한 생활을 하다가 1911년 숨을 거두었다.


» 다니엘 파울 슈레버(1842~1911)
이 회상록의 초고는 관련자들의 프라이버시에 관한 매우 직접적인 진술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출판사 편집자가 그런 부분을 삭제한 채 출간했지만, 그래도 걱정이 된 슈레버 집안 사람들이 이 책을 모조리 사들여 폐기하는 통에 하마터면 지상에서 사라질 뻔했다. 그랬던 것이 1911년 프로이트가 이 회상록을 자료로 삼아 슈레버의 편집증을 해석한 논문 <편집증 환자 슈레버-자전적 기록에 의한 정신분석>(한국어판 프로이트 전집 11권 <늑대인간>에 수록)을 발표함으로써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됐다. 이 논문에서 프로이트는 슈레버의 망상을 ‘아버지 콤플렉스’와 ‘동성애 소망’의 결과로 해석했다. 일찍 여읜 아버지에 대한 동성애적 애착이 플레히지히 교수에게 전이돼 박해망상으로 진전됐다는 것이다. 실현될 수 없고 용납될 수 없는 소망을 부정하는 과정에서 애착이 증오로 바뀌고, 다시 증오에 뒤따르는 두려움이 박해망상으로 나타났다고 프로이트는 해석했다.

1951년 미국 정신분석학자 윌리엄 니덜랜드는 슈레버의 광기를 잘못된 가정교육의 결과로 해석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슈레버의 아버지는 유명한 신체교정 전문의였다. 그는 과학적인 수단을 통해 인간을 더 완전한 존재로 개선한다는 계몽주의적 확신에 찬 개혁가였는데, 어린 슈레버의 자세를 반듯하게 유지시키고 육체에 건전한 정신을 심어주기 위해 위해 자신이 고안한 신체 통제 기구들을 사용했다. 그런 기구들로 육체적 압박을 받았던 슈레버가 훗날 편집증적 망상에 시달리게 됐다는 것이 니덜랜드의 해석이었다.

독일 출신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엘리아스 카네티(1905~1994)는 1960년 펴낸 인류학적 저서 <군중과 권력>의 마지막을 슈레버 사례의 분석으로 채웠다. 그는 슈레버가 앓은 편집증이 ‘권력의 병’이라며 “이 병에 대한 탐구는 권력의 본질을 밝히는 데 가장 명백하고 완벽한 실마리를 제공한다”고 썼다. 슈레버는 망상 속에서 자신이 주변의 수많은 영혼들을 자기 내부로 빨아들여 몸 안에서 파괴한다고 주장했는데, 카네티는 슈레버의 편집증적 망상이 “군중을 먹이로 삼고 군중으로부터 양분을 끌어내는 권력의 원형”이라고 설명했다. 또 카네티는 슈레버의 편집증적 망상 체계와 슈레버 사후 등장한 나치즘 체제가 구조적으로 동일하다고 주장했다. 옮긴이는 이 회상록이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문학적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강조한다. “이 책은 망상이라는 형태로 변형된, 20세기 초 한 유산시민 계급의 의식과 무의식을 규정했던 사회·정치·역사·문화적 상황들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자, 자신을 엄습하는 정신적·육체적 고통에 맞서 싸운 한 개인의 생생한 인간 드라마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