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국민들을 향해 라디오 연설을 했다고 한다. 그 장황한 연설의 핵심 메시지는 „우리에겐 희망이 있고, 대한민국의 미래는 여전히 밝습니다“라는 한 마디에 요약되어 있다. 말하자면 대통령은 라디오 연설을 통해 침체된 경제와 위기 속에서 고통받는 국민들에게 어떤 정신적 자극을 주길 원했던 것 같다. 그런데, 왜 라디오였을까? 24시간 TV 가 방영되고 있고, 또 그것보다 더 높은 비율로 거의 전 국민에게 개통되어 있는 인터넷도 있는데 왜 라디오를 대국민 연설매체로 삼았던 것일까? 요즘도 아침 출근 시간에 MP 3 플레이어나 모바일 테레비젼이 아니라 라디오를 듣는 국민들이 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혹시 되도록이면 많은 국민들이 대통령의 대국민연설을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어떤 무의식적 바램이 있었던 것일까? 추측컨대 아마도 거기엔 1932년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라디오 대국민 연설을 통해 경제공황에 힘겨워하던 미국 국민들에게 큰 – 긍정적 –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사례를 재현해보고 싶은 욕망이 작용하고 있었던 듯 하다. 동부 지역 악센트가 섞인 영어로 직접 국민들을 향해 이야기하는 대통령의 이미지는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정치적 체험이었고 이를통해 생겨난 국민들의 신뢰는 그가 벌인 뉴딜 정책이 성공하게 했던 보이지 않던 배후였다. (이에 대해선http://www.zeit.de/2008/48/Roosevelt
참조) 루즈벨트 대통령이 당시 공황으로 힘들어하던 미국민들에게 행했던 연설의 핵심메시지 – „우리에겐 희망이 있습니다“ – 를 이명박 대통령이 한국민을 향해 했던 그것과 비교해보면 이 대통령이 대국민 연설 매체로 라디오를 선택했던 배후에는 1930년대 루즈벨트의 신화를 2008년 대한민국에 다시 되살려보려는 욕망이 깔려있을 것이라는 의심은 더 짙어진다. 여기서 당시 루즈벨트는 왜 TV나 인터넷이 아니라 라디오를 대국민 연설의 매체로 삼았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사람들은 코웃음 칠 것이다. 당연하지! 인터넷은 존재하지도 않았고 TV보다는 라디오가 훨씬 더 대중적으로 보급되어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 질문을 대국민연설을 행했던 이명박 대통령에게 던져본다면 어떨까? 왜 국민들에게 다가가는 접근력에서 TV나 인터넷 보다 떨어지는 라디오를 대국민 연설의 매체로 선택했느냐고. 여기에서도 대통령과 국민들 사이의 거리는 여전히 좀처럼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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