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금융위기와 국가권력

김남시 2008. 10. 17. 02:55

월스트리트에서 시작된 금융 위기는 이제 세계로 확산되어 자식을 외국에 유학보낸 한국의 기러기 아빠들은 물론 퇴직금을 몽땅 증권에 투자한 노년의 실업자들까지 불안에 떨게 만든다. 노동에 기초하지 않고도 다만  미래의 이윤에 대한 기대만으로도 엄청난 돈을 벌게해주던 울트라 자본주의의 귀결은 천문학적 액수의 공적 자금 우리의 혈세 이루어진 투입하고 은행들을 국유화하는 등의 사회적 해결책을 불러내고 있다.

 

1857 맑스가 New York Daily Tribune 발표한 논문 유럽에서의 금융위기에서 말했듯 개인 자본가들의 손실을 정부가 대변하는 사회 전체의 재산으로메꾸어 주려는 이러한 공산주의적조처(Die Zeit,  16. Oktober 2008) 금융 자본주의를 최전방에서 선두하고 있던 미국 아니라 다른 유럽 국가들까지 가세하고, 평소엔 이곳 저곳에서 투철한 반공 의식을 떠벌리던 수많은 사람들조차 그에 동조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참으로 아이러니컬하다. 자본의 붕괴를 꿈꾸었던 사람들이 이제 막상 닥쳐온 자본의 거대한 붕괴 앞에서 두려워하면서, 어떻게 해서든 그를 막아야 한다고, 그를 위해선 보다 강력한 국가의 개입과 힘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는 현실은 우리의 미래를, 단지 폭등하는 환율과 경제침제가 나의 통장 잔고에 미칠 영향 때문만은 아닌 다른 이유에서도, 어둡게 만든다.

 

지젝은 Die Zeit 기고했던 („Klassenkampf in Washington“, 9.oktober 2008)에서 은행들을 구제하려는 이런 국가적 조처들에 대해 분노하기 보다는 그는 이것이 파풀리즘적 유혹이라고 말하다 - 그것을 가능케 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해 사유 결단력을 가질 것만 권고하는 것일까? 그건 앞으로 우리의 생존이 이토록 거기에 매달려 있는 자본주의를 함부로비판할 없다는 깨달음일까? 자본에 대한 규제와 방임이라는 신자유주의의 원리가 지금의 금융위기로 이어졌다면, 그에 대한 비판이 이제 사회 전반에 대한 국가 권력의 개입과 규제를 요구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은 단순한 위해, 국가 권력으로부터의 개인의 자유를 요구해왔던 자유주의의 근본원리까지 내어주고자 하는 위험스러운 행로는 아닐까?     

 

벌써 오래전부터 우리의 계산과 예측 능력을 벗어나 자신의 법칙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증권과 환율 시세가 우리의 일상적 삶을 이렇게나 깊이 규정하고 있었다는 깨달음은, 우릴 어떻게 손써볼 없는 강력한 자연 재해 앞에서 망연 자실해 있는 원시인들처럼 만든다. 교환을 편하게하기 위해 만들어 화폐와 그것이 축적되어 생겨난 자본으로부터 이제 노동을 투여하지 않고도 거의 무한히 혼자 증식하는 금융자본이 생겨났던 과정은, 처음엔 우리 자신의 필요에 의해 우리가 만들어냈지만 스스로 개량하고 발전해 오히려 인간을 공격해오는 SF 속의 기계와 로보트를 연상시킨다. 우린 그들이 다시 인간의 명령에 복종하도록 수리 있을까?  그런데, 국가 권력이 아니라면 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