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수 있는 세계

연애 상담자 칸트

김남시 2008. 5. 26. 19:53

 

1791 8월 임마누엘 칸트(1724-1804)는 오스트리아의 젊은 여인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숨가쁜 문장으로, 한 번도 직접 만나 본적이 없는 노년의 대가 철학자를 곧바로 „Du“라고 지칭하며 시작하는 이 편지는 발터 벤야민이 지적했듯 그 원시적 단순함과 완전히 뒤죽 박죽인 철자법을 통해 오늘날의 독자들에겐 더 이상 견디기 힘든 최후의 절망적인 사투의 인상을 준다.“ (Walter Benjamin, Kant als Liebesratgeber, GS IV.2, S.812.) 그것은 이 편지 속에 당시 스물 한 살의 젊은 여인 마리아 폰 헤르베르트 Maria von Herbert의 잃어버린 사랑에 대한 고통스러운 절망과 결국엔 그녀를 자살로까지 몰아갔던 도덕적 요구와 삶의 요구 사이의 충돌이 거칠게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위대한 칸트,

나는 신앙인이 자신의 신을 부르듯, 당신에게 도움을, 위로를, 그게 아니라면 죽음을 준비하는 데 필요한 조언을 구합니다. 당신 저작들 내에서 당신은 차후의 존재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하고 있기에, 나는 당신에게 도피처를 구합니다. 다만 여기 이 삶 속에서 나는 내가 잃어버린 것을 대체해 줄 만한 것을 아무 것도, 전혀 아무 것도 찾지 못했습니다. 나는, 내 직관 속에선 이 세상 모든 것에 견줄만한 한 대상을 사랑했고, 그래서 오직 그를 위해서만 살았습니다. 그는 내게는 다른 모든 것들의 대립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와 비교해보면 세상의 모든 것들은 내게는 그저 쓸모없는 잡동사니로만, 다른 모든 사람들은 내게는 실제에 있어서도 정말 내용없는 수다 (ein gwasch ohne Inhalt)로만 보였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대상을 나는 오랜 동안의 거짓말을 통해 모욕했었는데, 이제 그가 그 거짓말을 알아차렸습니다. 하지만 결단코 그 거짓말엔 내 성격을 훼손시키거나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나는 일생 동안 아무 것도 숨길만한 짓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에겐 바로 이 거짓말 하나가 나에 대한 사랑이 사라지게 하는데 충분한 이유였습니다. 정직한 남자인 그는 내게 친구 관계로 충실하게 남아있을 것까지 거부하지는 않았지만, 서로를 향해 끌리게 했던 그 내적인 감정은 이제 더 이상 없습니다. , 내 가슴은 천길 만길 찢어집니다. 내가 지금까지 당신의 책들을 그렇게 많이 읽지 않았더라면 나는 분명 이미 내 삶을 폭력적으로 끝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이론에서 내가 얻었던 결론은 나를 붙들어 잡고는, 고통스러운 삶 때문에 죽어서는 안된다고, 자신의 존재에 근거해 wegen meinen Daseyn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저는 당신에게 부디 나의 입장이 되어 내게 위로를 주든, 아니면 비난을 퍼부어 주기를 원합니다. 정언명법을 포함한 도덕 형이상학을 다 읽었지만 그건 내겐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았습니다. 내 이성은 내가 그를 가장 필요로할 때 나를 떠나 버립니다. 나는 당신이 이에 대한 대답을 주기를 간청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스스로도 당신이 내세웠던 정언명법에 따라 행동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편지원문)

 

이미 60세가 넘은 칸트에게도 이 편지는 단지 젊음의 치기와 열정에서 결과한 사랑의 상처를 당시 사교계의 유명인에게 호소함으로써 자기 만족적 위로를 얻어 보려는 팬레터 같은 것으로만 받아 들여지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 칸트를 알고 있던 동시대인들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칸트는 당시 저명한 철학자에게 편지를 보내 예의상 쓰여진 그의 답장을 받아 보려는 많은 사람들의 편지 공세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자기가 쓴 철학적 수고들을 동봉해 그에 대한 원로 철학자의 조언을 구하려던 딜레땅뜨 철학자들의 편지에 대해 칸트는 특히 불쾌하게 여기고 있었다.[1] 이러한 상황을 생각해보면 격정적이고도 무례한 어법[2]으로 쓰여진 이 편지가 그냥 칸트의 편지함 속에 묻혀 버리고 말았다 하더라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칸트는 거의 1년이 지난 후이긴 하지만 1792년 초 그녀의 편지에 답장을 보낸다. 왜 그랬을까?

 

여기엔 스물 한 살의 마리아 폰 헤르베르트의 편지가 도발적 문장으로 칸트 윤리학의 근본 문제들을 자극했다는 사실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편지에서 밝힌 바 처럼 <도덕 형이상학>을 비롯한 칸트의 많은 저작들을 이미 읽고 알고 있었던 그녀는 칸트의 윤리적 가르침을 실천하며 살아 가려는 칸트 신봉주의자[3]가족의 일원이었다. 이미 몇 세대 전부터 화학 사업을 통해 번창해오던 집안의 계보를 이어 백연 생산 공장을 운영하던 그녀의 아버지 헤르베르트는 당시 유럽의 많은 부르조아들 처럼 기업가로서의 자신의 삶을 철학적, 윤리적 기반 하에 이끌어 가려던 전형적인 프로테스탄트였다. 그에게 쾨니스베르크의 철학자 칸트의 저작들은 자신 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의 삶의 지침서였고, 거기엔 그 집 안의 여자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우리는, 거짓말 때문에 연인 관계를 청산해 버린 마리아 폰 헤르베르트의 상대 남자 역시 칸트의 윤리적 가르침을 충실하게 따르는 칸트 신봉자 출신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유추해 볼 수 있다. 칸트에게 있어 거짓말은 도덕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자신에 대해 갖는 의무에 대한 가장 큰 위반 Verletzung“이자 인간으로써의 존엄성을 내다 버리고 그를 파괴하는 [4] 행위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에서 칸트는 예를들어 누군가의 목숨을 구하기 위한 선한 목적으로 행해지는 거짓말은 허용되어야 한다며 칸트의 의무론을 반박했던 Benjamin Constant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무조건적인 진실함에의 의무[5]를 내세운다. 진실함Wahrhaftigkeit인간 성격 Charakter의 본질이라고 여기는 칸트는 나아가,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성격을 갖지 못하며 그에게 무언가 좋은 점이 있다고 한다면 그건 다만 그의 기질 Temperamente에서 연유하는 것일 뿐[6] 이라고 까지 말하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사랑하던 여인과의 연애 관계의 해소를 요구했던 마리아 폰 헤르베르트의 ()애인은 거짓말에 대한 칸트의 엄격한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고 있었던 셈이다. 말하자면 그는 남녀 관계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육체적이고 에로틱한 욕구까지도 칸트의 가르침에 의해 촉발된 윤리적 의무 의식을 통해 극복했던 것이다.

 

칸트가 마리아 폰 헤르베르트에게 보낸 답장에서 우리는 남녀 관계를 바라보는 칸트의 이러한 도덕적 관점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그녀가 자신의 거짓말에 대해 진정한도덕적 견지에서 뉘우치기를 요구하는 칸트는, 바로 그러한 진실한 윤리적 뉘우침을 통해서야 비로소 그녀의 잃어버린 사랑이 되돌아 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 어떤 알량거림도 없이 미덕과 정직함에 대한 가르침에 그토록 예민한 걸로 미루어 보건대 당신의 가슴 Herz은 미덕과 정직함을 향해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런 가슴 속에서부터 쓰여진 당신의 격정적인 편지는, 당신이 내게 원했던 것처럼, 당신의 입장이 되어 당신을 위해 순수하게 도덕적인, 그를통해 근본적으로 당신을 위로할 수 있는 수단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부추킵니다. (…) 우선 나는 당신이 행한 거짓말 물론 어떤 부덕한 행위를 감추기 위한 것이 아닌 그 거짓말 에 대한 쓰디쓴 자책이 다만 더 영민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자책인지 아니면 거짓말하는 행위 자체 속에 담겨져있는 부도덕함 Unsittlichkeit에 대한 내적인 후회인지를 살펴보도록 권하고 싶습니다. 만일 첫번째 경우라면 당신은 다만 당신의 거짓말이 발각되었다는 것에 대해서만 자책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당신은 의무를 행했다는 사실에 대해 자책하는 것이지요.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의도적으로, 비록 그에게 어떤 피해를 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일정 기간동안 잘못된 지식을 갖게 했다면 그런 잘못된 지식으로부터 그를 벗어나게 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의무입니다.) 당신이 그것이 거짓말로 밝혀졌다는 사실에 대해 후회하는 것이라면, 그 이유는 그것이 당신에게 당신 친구의 신뢰를 상실하는 불리함을 가져다 주었다는 데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후회는 그 후회를 일으킨 원인의 견지에서 볼 때 아무런 도덕적인 것도 포함하고 있지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후회의 원인은 거짓말이라는 행위 자체에 대한 의식이 아니라 다만 그 행위의 결과에 근거하고 있으니까요. 이와는 달리 당신을 괴롭게 하는 자책이 진실로 당신의 행위에 대한 윤리적 판단에만 근거하고 있는 것이라면, 당신에게 이미 한번 일어난 일은 되돌릴 수 없다고 말하면서 당신의 심의 Gemuet에서 이 자책감을 없애고 앞으로는 영혼 전체의 확실한 정직성을 위해 노력하라고 충고하는 사람은 당신에게는 별 도움을 주지 못하는 무능한 도덕적 의사 ein schlechter moralischer Arzt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양심은 그를 거스리게 했던 모든 것들을 철저히 보존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양심은 이미 판정이 끝난 범법 행위들의 서류들도 폐기하지 않고 아키브에 보관하는 재판관과 같습니다. 그건 그를 통해 이후 그와 유사하거나 다른 범법 행위들을 최대한 정의롭게 판정하기 위한 것이지요. 그러나 다른 한편, 계속 그 후회에만 매달리면서 이미 다른 사고 방식이 들어선 이후에도 계속해서 지나가 버려 더 이상 재생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자책으로 삶을 쓸모없이 만드는 것 또한, (그의 삶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것이 보장되어있다 하더라도) 하나의 망상적 견해에 다름아닐 것입니다. 그 견해는 우리는 스스로 더 나은 인간이 되도록 노력할 필요 없이, 다만 초월적 힘으로부터 은혜를 받기위한 종교적 수단으로써 자기 자신을 책망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인간의 도덕적 행위의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유 방식의 전환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당신이 사랑하던 친구에게 알려진다면 정직함은 외면될 수 없는 자신의 언어를 갖고 있으니까요 미덕의 개념에 근거해 있는 그의 정당한 불만의 흔적들이 조금씩 사그라들고 냉랭한 분위기가 더 굳건하게 기초된 끌림 Zuneigung으로 변화하는 데는 다만 시간 만이 요구될 것입니다. 만일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의 이전의 따뜻한 끌림은 도덕적이기 보다는 물리적 physisch 이었다는 것을, 그래서 그런 물리적 끌림의 일시적인 본성상 그것은 그렇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사라져버릴 것에 다름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편지에서 당신은 처벌과 위로에 대한 가르침을 발견할 것입니다. 나는 당신에게 위로보다는 처벌에 좀 더 오랫동안 머물러 있기를 권고합니다. 그것은 처벌이 그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면 위로와 잃어버린 삶의 만족감은 분명히 스스로 다시 찾아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편지원문)

 

칸트 저작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는 법정, 재판, 재판관 등의 법적 메타포들이 여기서도 예외없이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 말고도, 우리는 이 편지에서 남녀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주어져 있는 ()존재 Sein 의 사실성 Faktizität 을 당위 Sollen와 의무의 요청 하에 복속시키고 싶어하는 칸트 철학의 기본 경향을 발견한다. 남녀 사이의 끌림에 물리적physisch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칸트에겐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노력을 통해 극복또는 지양되어야 할 요인이다. 그 끌림은 모든 물리적이고 감각적인 것이 그러하듯 시간이 지나면 금새 덧없이 사라져 버릴 것이며, 그러한 점에서 그건 칸트에겐 진정한사랑으로서의 가치를 갖지 못하기,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해, 가져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칸트의 이 편지를 단언컨데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충격적인 철학자의 편지라고 일컫는 발터 벤야민은 이러한 맥락에서 남녀 관계를 바라보는데 있어서 칸트의 완벽한 순진함“, „오늘날엔 14살짜리들도 웃게 만들 만한, 에로틱한 감정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에 대한 어린애 같은 무지[7]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것이 칸트의 강한 도덕주의에서 기인하든, 아니면 발터 벤야민이 지적하듯 남녀관계에 대한 칸트의 순진한 무지에서 기인하든, 어쨌든 대 철학자 칸트가 스물 한 살의 마리아 폰 헤르베르트에게 보낸 남녀 관계에 대한 도덕적 가르침은 정작 그녀에게는 그리 큰 도움을 주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칸트의 답장을 받은 그녀는 칸트의 요구대로 자신의 거짓말을 진정으로뉘우치고 물리적이 아닌 도덕적 끌림에 기초한 사랑의 길로 나아가기 보다는 1년 후 칸트에게 재차 도발적인 편지를 보냈기 때문이다. 그 어조는 더 급박해져 있었고 칸트 윤리학의 공허함에 대한 그녀의 불만은 더 날카로와졌다. (계속…)



[1] Immanuel Kant. Sein Leben in Darstellungen von Zeitgenossen. Die Bibliographien von L.E. Borowski, R.B. Jachmann, E.A. CH. Wasianski.

[2] 마리아 폰 헤르베르트의 편지는 편지 글에서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존칭 Sie 대신에 Du 를 사용하고 있다. 독일어의 Siezen Duzen 의 차이가 한국어의 너 나 체당신 체존대법과는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처음 말을 거는, 그것도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대 철학자에게 초반부터 Duzen을 사용하는 것은 통상적이지 않은 어법이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그녀는 칸트에게 보낸 두번째 편지부터는 다시Siezen 을 사용한다.

[3] 유럽에서 칸트 신봉주의자들의 흔적이 20세기 중반에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책이 있다. 1945년 프랑스 철학자 Jean-Baptiste Botul(1896-1945)은 파라구와이에 이주해 그 곳에서 새 쾨니스베르크“ ! Neu-Königsberg“라는 마을을 이루고 칸트의 윤리적 원리에 따라 금욕적인 공동생활을 하던 독일 출신의 칸트 신봉자들에게 칸트의 성생활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행하기도 한다. 이 강연은 <Das sexuelle Leben des Immanuel Kant>라는 제목으로 2001 Reclam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정액은 물론 침과 땀 등 모든 종류의 인간의 체액이 몸 바깥으로 배출되게 하는 행위를 섭생술적 원리에 따라 극도로 자제하던 칸트에게 성생활이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러한 자신의 섭생술에 대해 칸트는 1798년 출간된 <단지 의도 만으로 몸이 아픈 감정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심의 Gemüts의 힘에 대하여 Von der Macht des Gemüts, durch den bloßen Vorsatz seiner krankhaften Gefühle Meister zu sein >에서 소개하고 있다. 이 글은 Der Streit der Fakultäten 의 제 3 장에 실려있다. 칸트 철학과 그의 섭생술의 관계에 대해선 다음을 기약한다.

[4] Metaphysik der Sitten, zweites Hauptstück, I. Von der Lüge.

[5] Über ein vermeintliches Recht aus Menschenliebe zu lügen.

[6] Kant : Über Pädagogik, in Werke in 12 Bänden. Bd.12. S.740-754.

[7] Walter Benjamin, Kant als Liebesratgeber, GS IV.2, S.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