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삶

"오죽하면"

김남시 2008. 2. 21. 20:15

오죽하다 : 정도가 매우 심하다. (주로 의문 종결형 앞에서 ‚오죽하면’, ‚오죽해서’의 꼴로 쓰임). 예문 : „오죽하면 그 짓을 했을까“.

(동아 새국어 사전, 1647 )

 

오죽하면이라는 한국어 단어는 다른 언어로 번역하기가 쉽지않다. ‚오죽하면의 기본형 오죽하다는 내가 가지고 있는 시사 한/영사전엔 아예 해당되는 번역어가 없고, 다만 오죽이라는 단어만 „how much, very, indeed“ 라고 옮겨져 있다. 엣쎈스 한/독 사전은 오죽„sehr, bestimmt, wirklich, wie viel“로 풀이하고 있는데, 이를통해 한/ Korean/German 사전이 결국 한/ Korean/English사전과 영/ English/German 사전의 떳떳치 못한 외도관계를 통해 탄생한 사생아에 다름 아니라는 내 의심만이 확인되었을 뿐이다.  

 

일본어 사전들이 한국어 오죽에 해당되는 번역어로 제시하고 있는 いかほど(如何程); どんなに, きっと등의 단어도 못마땅하기는 마찬가지인데, 여기에서도 결국 영어나 독일어 사전들이 제시한 단어들과 별다른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이라는 단어가 쓰인 용례로써 숭례문 방화 피의자가 작성한 편지를 통해 유명해진 문장 오죽하면 이런 짓을 하겠는가를 구글 번역기는 Even if I did do this”라는 영어문장으로 옮기고 있다. 그러나, 위 한국어 문장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이 영어 번역문이 오죽하면이라는 단어에 함축되어 있는 모순적 긴장감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지 못하다는 걸 금새 감지할 수 있다.

 

„오죽하면 A가 그런 짓을 했을까“ 라고 말하는 화자는 특정 주체 A와 그가 행한 행위 („그런 짓“), 나아가 그에게 그런 행위를 유발시킨 어떤 힘, 이 세 요소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는 첫째로 A가 행한 행위가 사회적, 도덕적으로 부적절한 행위(„그런 짓“) 였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둘째로, A로 하여금 그런 짓을 할 수 밖에 없도록 했던 힘 사회적, 상황적 조건들, 그로인해 생겨났을 A의 내면적, 심리적 상태 의 맹목적 강렬함을 인정하고 있으며, 이를통해 그는 세째로, A에 대한 심정적 동조 - ‚이성적 동조가 아닌, 왜냐면 그는 이성적으로는 A행위의 부적절성에 대해 비판적이기 때문에 - 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국어 사전을 비롯 영어, 일어, 독일어 사전들이 한결같이 오죽“, „오죽하다의 의미로 제시하고 있는 정도가 매우 심한, 과한은 다만 저 두번째 요소, A의 행위의 원인으로 가정된 사회적, 상황적 조건들과 그의 내면적, 심리적 상태에만 관련되어 있다. , „정도가 매우 심한어떤 특정한 사회적, 상황적 조건들이 A로 하여금 정도가 매우 심한어떤 내면적, 심리적 상태를 불러 일으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행위를 초래했던 상황적 조건과 심리적 상태의 정도가 매우 심하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그 행위에 대한 심정적 긍정과 동조가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제한된 이해에 근거한 번역어들이 오죽하면이라는 단어에 함축되어 있는 나머지 의미 요소들, 곧 그러한 상황적 조건과 내면적 상태에 대한 화자의 긍정, 그를통해 행위자 A에 대한 화자의 심정적 동조라는 두 측면들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런 점에서 당연한 일이다.

 

오죽하면 (나훈아가) 옷을 벗었겠냐”, “오죽하면 (교수가) 석궁을 쏘았을까”, 오죽하면 (단병호가) 탈당을 결심했겠나?“, 오죽하면 노동자들까지무능한 개혁보다부패한 보수에 더 많은 점수를 주기 시작했을까?, 오죽하면 (이란이) 핵개발을 하려고 할까?“ 등의 문장은 오죽하면을 타자의 행위와 관련해 사용한 사례들이다.  

 

한 행위의 사회적, 도덕적 부적절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행위를 유발시킨 상황적, 심리적 조건의 정도가 심함을 수긍함으로써 생겨난 행위자에 대한 심정적 동조를 한 단어를 통해 함축하고 있는 오죽하면이라는 표현은, 이러한 점에서 다른 언어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특정한, 어쩌면 특유하게 한국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를, 어떤 모순적인 의식상태를 대변하고 있다. 그것이 모순적인 의식인 이유는 그 속에서 특정 행위의 부적절성에 대한 이성적 판단이 그 행위에 대한 심정적 동조와 무매개적으로 결합되어 있기 때문인데, 이러한 분열된 의식의 모순적 결합은 많은 경우 (자기) 파괴적 행위로 이어진다. 이러한 상황은 이 단어 오죽하면이 화자와 행위자가 일치하는 1인칭 문장에서 사용되었을 때 더 분명해진다.

 

오죽하면 (내가) 이런 짓을 하겠는가라고 말하는 화자는 무엇보다 첫째로, 자신이 저지른 행위의 사회적, 도덕적 부적절성에 대해 의식하고 있다. 자신의 행위가 사회적, 도덕적 견지에서 볼때 불명예스럽고, 수치스러우며 때로는 반 사회적이라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는 이 문장의 화자(동시에 행위 주체)는 그러나, 자신 행위에 대한 이러한 자기 아이러니적 거리감을 견지하기 보다는, 발화의 수취인으로 상정된 제삼자를 향해[1] 자신에 대한 심정적 동조를 호소하는 데로 나아가고 있는데, 그를위해 그가 내세우는 것은 자신의 행위를 촉발시킨 사회적, 상황적 조건의 정도가 심함”, 그로인한 내면적, 심리적 상태의 강렬함이라는 자기 자신의 확실성 Gewißheit seiner selbst”이다.

 

 오죽하면의 의식은 이러한 점에서 한편으로는 헤겔이 말하는 인륜적 의식 Das sittliche Bewußtsein과 유사성을 갖는다. 여기서 행위자는 자신의 부적절한 행위의 동기가 되었던 자기 자신의 확실성의 맹목성을 그 원인으로 상정된 부당한 현실 rechtslose Wirklichkeit”[2]로 부터 이끌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현실의 부당함의 심한 정도는 그의 행위를 촉발시켰던 내면적, 심리적 상태의 강렬함, 자기 자신의 확실성의 원인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인륜적 의식이 그러한 부당한 현실에 맞선 맹목적인 인륜적 확신에 차 행한 자신행위의 현실적 결과를 죄 Schuld로써, 나아가 운명 Schicksal으로 받아들이는[3] 반면, “오죽하면의 의식은 제삼자의 심정적 동조에 호소함으로써 자신의 부적절한 행위를 변호하려고 한다. (자신의 눈을 찌르고 방랑의 길을 떠나는 대신 내가 오죽하면 그렇게 했겠는가라고 자신을 변호하는 오이디프스를 상상해보라!) 그에 반해, 오죽하면 내가 나서겠나“ (이회창), „오죽하면 내가 이런 짓을 하겠는가“ (숭례문 방화 피의자), „오죽하면 내가 아내를 때렸겠는가등등. 

 

어떤 행위를 불러일으켰던 사회적, 상황적 조건의 부당함, 그로인한 내면적 상태의 강렬함을 강조함으로써 그 행위의 사회적, 도덕적 부적절함에 대한 (자기)의식을 중립화시키고 변호하려는 이러한 오죽하면의 의식은 이러한 점에서 한편으로는 한국 사회의 강한 도덕화 경향에 대한 언어적 반발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사람들의 행위를 그것의 사회적, 도덕적 부적절함의 차원에서만 판단하고 비판하는 경향을 키워나갈 수록, 그 행위들에 대한 심정적 똘레랑스를 부각시킴으로써 도덕화 경향에 대해  수동적으로 항거하려는 오죽하면의 문장들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오죽하면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 의해 사용되고 또 받아들여지게 된다면 이는 우리 사회가 사회적 행위들에 대한 규범적, 규제적 가치 기준들을 심정적 동감의 원리에 따라 해체시키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신호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는 나아가 모든 종류의 사회, 정치적  결정과 사건들에 대한 규범적, 가치적 비판을 어렵게 만들 것이다. “오죽하면 운하를 건설하려 하겠는가”, “오죽하면 영어 수업을 도입하려 하겠는가”, “오죽하면 경찰을 투입하겠는가”, “오죽하면 전쟁을 벌이겠는가라는 문장들은 우리가 오죽하면의 내적 논리를 받아들이는 한 규범적으로 비판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오죽하면 파업을 벌이겠는가”, “오죽하면 단식투쟁에 나서겠는가등의 문장을 사용하는 사회 운동권은 그를통해 스스로의 진출을 가로막을 바리케이트를 쌓고 있는 것이다.)



[1] 쟈크 데리다가 분석했듯 자신의 언어의 일면성 혹은 특수성을 지양하는 제 삼자를 향하는 m’adresser제스쳐는 모든 가능한 정의의 조건이기도 하다. Jacques Derrida : Gesetzeskraft. Der mythische Grund der Autorität, S.34-35.

[2] Hegel : Phänomenologie des Geistes, S. 343.

[3] Hegel : Phänomenologie des Geistes, S. 347-3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