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베를린

사적영역과 인터넷 개인공간

김남시 2007. 1. 2. 22:05

인터넷 개인공간이 유행이다. 사진과 글로 자신을 표현하던 블로그 문화를 거쳐, 이제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옷과 헤어스타일, 악세사리를 착용한 가상자아 (아바타)를 다양한 가구와 장식들로 꾸민 가상공간에 배치해 현실의 자신을 대신하게 한다. 한국에선 학생과 직장인을 비롯, 수많은 이들이 애용하는 이런 인터넷 개인공간이 그러나, 독일에선 그리 성행하지 않는다.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도 있긴 하지만 사용자 수는 한국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적다. 왜 일까. 

 

캐나다의 사회학자 어빙 코프만은, 모든 나라가 타국이 침범해선 안될 영토를 갖듯 한 사회의 개인들도 자신만의 사적영토Terrytory of self를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엘리베이터나 버스, 지하철에서 서로 간에 거리를 두고, 남의 물건에 손을 대거나 타인의 일기나 편지를 보는 것, 남의 대화를 엿듣는 걸 무례한 행위로 간주하는 것은 그 개인들의 사적영토에 대한 존중에서 나온 것이다. 개인의 육체와 그의 소유물, 행위등을 통해 생겨나는 사적영토를 서로 존중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사회적 공동생활은 불가능할 것이다. 흥미로운 건 그 사적영토의 크기와 형태가 서로 다른 사회의 삶의 조건에 따라 다양하다는 거다. 

 

독일인들은 매우 넓은 사적영토를 가지고 있다. 줄을 서거나, 버스나 지하철,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들은 서로 멀찍이 떨어져 선다. 실수로 남의 물건이나 몸에 부딪혀 부득이 상대의 사적영토를 침범했을 땐 곧 사과한다. 한 나라의 영토를 침범하는 것이 그 주권에 대한 침해이듯, 개인의 사적영토에 대한 침범도 그 개인에 대한 침해라고 여기는 것이다. 육체적 사적영토에 대한 존중은 개인적 삶의 사적영토에 대한 인정으로 연결된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처음 만난 상대의 나이, 결혼여부, 출신학교 등 그의 사적영토에 속하는 사생활에 대해 묻지않는 걸 예의로 여기는 것도 그 때문이다. 누구의 시선도 아랑곳 않고 문신과 피어싱을 하고, 독특한 헤어스타일로 거리를 누비며 기괴한 옷으로 자기를 연출하는 이들의 자유 분방함도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않는 한 서로의 사적영토를 철저히 인정하는 문화의 소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 속에서 이미 충분한 사적영토를 보장받고 있는 이들이 굳이 가상공간에 개인의 영토를 가질 필요를 느낄까? 저 사이버 사적영토는, 짧은 시간에 다수를 수송해야 하는 사회적 필요에 개인 사이의 육체적 거리가 희생되고, 문신과 피어싱, 헤어스타일, 옷 등을 통한 자기표현 욕구가 집단적 규범에 양보되는, 현실의 사적영토를 결핍한 사람들의 대리충족 용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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