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베를린

근대적 도시민

김남시 2007. 1. 2. 22:02

 

옴니버스, 기차나 전차가 생겨나기 이전에 사람들은 서로 아무 말도 나누지 않으면서 몇 분에서 몇 시간동안 마주보고 있을 능력이 없었다. ’ 베를린 대학 교수였던 사회철학자 게오르그 짐멜이1908년 자신의 책에 썼던 구절이다.  19세기 후반부터 유럽에 등장한 새로운 대중 교통수단이 단지 도시의 외형 뿐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교제방식까지 변화시켰다는 점을 날카롭게 풍자하고 있는 글이다. 근대도시의 발생과 더불어 사람들은 버스, 전철, 기차 등의 대중 교통수단에서는 물론, 많은 공공장소와 대규모화된 직장에서도 서로 알지 못하는 익명의 사람들과 접촉할 기회를 수도없이 갖게 되었다. 한 집안의 숟가락 갯수까지 알던이전의 소규모 공동체에서와는 달리, 이제 사람들은 낯선 이로부터 자신의 사적 영역을 지키기 위해 서로간에 거리를 취하는 익명적 교제방식을 터득해야 했고, 그것이 짐멜이 지적하듯, 서로 눈을 마주 치면서도 아무 말없이 스쳐 지나갈 수 있는 근대적 도시민들을 탄생 시켰던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한 것은 이들 유럽인들보다 백여 년이나 뒤늦게 근대 도시적 삶의 방식을 받아들인 대한민국 서울의 도시민들이, 이미 백년 이상 먼저 도회지 생활을 체험해 온 독일인들보다 저 근대적 교제방식에 훨씬 깊이 물들어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내가 겪은 독일인들은 기차에서 마주앉게될 때는 물론, 복도를 스쳐 지나가거나, 엘리베이터를 같이 탈 때, 조깅 중 마주치거나, 병원 대기실에 들어설 때 등 많은 경우 안면도 없는 낯선 사람들을 향해 먼저 인사를 건넨다. 이 예기치 못한 독일인들의 인사에 처음엔 어떻게 대해야 할지몰라 당황해 한 적도 있다. 짐멜 식으로 말하자면 이 독일인들은 눈을 마주치고도 아무 말없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대다수 서울 시민들이 갖고있는 근대 도시인의 능력을 아직 철저히 체화하지 못한 탓일까.   

 

백 여년이나 뒤늦게 도시생활을 시작했던 우리가 이들보다 더 철저히, 그리 자랑스럽지만은 않은 저 능력을 얻게된 데에는 어쩌면 우리 삶의 조건이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거의 매일같이 몇 분 아니, 몇십분 동안 사람들로 꽉찬 만원버스와 전철, 통근기차 등을 타고 다녀야 하는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내게 밀착해 있는 바로 옆 사람의 시선까지 회피할 수 있는 능력을 길렀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그보다 멀리 떨어져 있는 마주치는 사람들의 시선 쯤이야.  

 

유럽이 근 이백년 간에 걸쳐 이룩한 근대화 과정을 단시간에 압축적이고 집약적으로 따라 잡았아야 했던 우리는 그 과정에서 이들은 이미 어떤 식으로든 극복하거나 폐기해버린 근대화의 부작용들 까지도 함께 받아들여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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