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unst

Helmut Lachenmann, Guero (1970)

김남시 2010. 11. 11. 10:22

토요일 학회에 갔다. 마지막 발표된 논문 - 서정은, "불확정적 요소를 띤 20세기 음악에서의 연주자의 해석적 관여" -에서 알게된 20세기 이후 현대음악의 여러 시도들은, 지금까지 내가 잘 모르고 있었던 현대 음악에 눈을 열어준 경험이었다. 무엇보다 20세기 현대 음악작곡가 - 발표자는 그들을 주로 ‘불확정적 indeterminant' 음악 이라고 불렀다 - 들은 그들의 곡 자체에서만 이전의 음악형식과 단절한 것이 아니라, 음악이라는 개념 자체를 변화 혹은 확장시켰고, 이것은 전통적인 기보법 자체에서의 혁신을 함께 가져왔다. 음악은 더 이상 이전처럼 선형적이고 단선적인, 동일한 시간/박자 단위로 구획된 프랑코 기보법에 기록되는 대신, 다양한 방식의 기록된 형식을 가지게 되는데, 예를들어 몇몇 단편적인 악도 더미 중에서 연주자가 자유롭게 조합을 해 연주하게 하는 기보법 (T. Riley), 기보대신 ’어떤 소리를 네가 그만해야 한다고 느낄 때까지 내라‘라는 텍스트로만 이루어진 기보(K. Stockhausen, Aus den Sieben Tagen), 마치 디아그램을 연상시키는 시각적, 기하학적 모양으로 이루어진 기보도 있었다. 그 중에서 특히 나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Helmut Lachenmann 이 1970년에 발표한 작품 Guero 였다.

 

이전까지 나는 음악을 들으면서 ‘음악’이란 작곡가가 의도했었던 ‘음들’의 특정한 조합으로 이루어진 것이 전부라고 여겼다. 이러한 관점에서라면 작곡가가 의도하여 악보에 기입된 음들외에 다른 소리가 연주시에 들어간다면 그것은 잘못된 연주이거나 연주자의 실수일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나의 오랜 생각은 기타 연주 음악을 들으면서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키타 연주에서는 키타줄을 튕김으로써 생겨나는 음들 뿐 아니라 키타줄을 누르고 있던 연주자의 왼 손가락이 그 줄에서 떨어지는 순간, 그리고 다른 줄로 이동할 때 생겨나는 '음 이외의 소리들'이 어쩔 수 없이 함께 녹음되어 들리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그 소리는 완결된 키타 음악이라는 작품에서는 사실 제거되어야 할,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조건으로 인해 들어가 버린 음악 외적인 소음인 것일까? 아니면  줄이 튕겨져 울리는 음들 중간 중간에 자리잡고 있는 그 소리는 음들과 더불어 그 곡 전체를 이루는 그 음악의 주요한 구성 요소일까?   

 

내가 아는 몇몇 키타 연주곡들 - 특히 팻 매시니 혹은 이병우 등 - 에서 나는 키타줄이 튕겨져 울리는 음이외의 소리들이 오히려 매력적인 그 음악 전체의 하나로 등장하는 것을 듣는다. 최소한 나에게 그 '음표 이외의 소리', 악보상으로는 분명 지시되어 있지 않을 그 소리는 키타로 연주되는 음악의 빼놓을 수 없는 구성요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악기와 연주의 물질성을 증거하는 그 소리들을 작곡가가 의도했던 '음'들로부터 배제하고, 정화시키려는 생각은, 그래서 음악이란 작곡가가 의도한 '순수한 음들'의 구성체여야 한다는 생각은, 인간 존재의 물질성을 사상한 채 인간을 그 관념으로만 정의하려는 관념론적 철학의 기획과 통해있다고 여겨진다.

 

만일 그렇다면 이는 키타 연주곡이 아닌 다른 악기 연주에서도 마찬가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예를들면 피아노 연주에서, 연주자의 손톱이 딱딱한 건반에 맞부닥칠 때 나는 소리, 건반이 눌러질 때 옆의 건반과 마찰함으로서 나는 서걱거리는 소리, 등은 피아노 연주곡에서는, 작곡가가 악보에 기입해놓은 음들 만을 위해 가능한 한 제거되고 정화되어야 하는 소리가 아니라 오히려 그 음악의 한 구성요소로 포함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해머가 피아노 줄을 때려 울려나오는 음 이외의 이러한 소리들을 그 음악의 구성 요소로 받아들이는 것이, 결국엔 소리들로 이루어진 음악의 본령에 더 접근하는 길은 아닐까?

 

Helmut Lachenmann 이 1970년에 발표한 피아노 곡 Guero는 이러한 나의 생각에 확증을 가져다 주게 했던 사례다. 그가 작곡한 피아노 곡은 건반을 눌러서 내는 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그의 곡은 손톱으로 건반을 긁거나, 피아노의 몸통을 두들기거나, 그랜드피아노의 피아노 줄 자체를 손가락으로 튕기는 등, 우리가 기존까지 음악외적 소리들이라고 이야기해왔던 소리들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곡의 악보는 전통 기보법과는 이런 소리들을 언제,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길게 내는지를 기록해 놓고 있다. (이런 곡이라면 건반의 서걱거림은 물론, 페달을 밟을 때 스프링이 늘어나면서 내는 금속음까지 음 이외의 소리들을 더 많이 나는 우리집의 낡은 피아노라면 더 훌륭하게 연주할 수 있을 것 같다!)    

   

 

 

 

Lachenmann (독일어로 그의 이름은 "웃는 남자"다!)이 여기서 시도했던 원리는 다른 예술 쟝르에서도 시도될만 하겠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 우리가 한 노래의 구성요소로부터  가급적 제외시키려 했던 가수의 숨소리, 나아가 그가 침을 삼키는 소리, 이빨이 부딪히는 소리, 입술이 붙었다 떼어지면서 나는 소리 까지도 그 노래의 구성 요소로 받아들인다면? 나아가 그런 음 이외의 소리들만으로 이루어진 노래를 만들어본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