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스크랩] 소위 말하는 학벌드립에 관하여

김남시 2010. 4. 2. 17:17

김예슬이 떠난 그 학교에, 저는 가고 싶습니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00326125000&section=02

 

"왜 김예슬의 대자보에만 주목하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350064&PAGE_CD=S0200

 

"나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스물세살 비정규직 노동자"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347358)

 

  위의 링크한 글들은, 김예슬씨의 선언조차 벗어날 수 없는 명문대-비명문대 프레임을 환기시키고 있습니다. 이솔넷의 slowdin님도 인상적인 방식으로 이에 관해 지적한 바 있고요. 하지만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문제제기들이 아직은 피상적인 차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강한 불만을 품고 있습니다. 예컨대 "그들만의 김예슬선언, 그들만의 88만원세대 담론"이라는 글 역시, 이러한 프레임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런 논자들의 관점으로 본다면 예슬씨의 선언은 기존의 학벌 기득권에 역설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일종의 사회적 "스펙터클"처럼 되어 버립니다. 다시 말해 그녀의 선언은 오늘날 사회적 불의에 관한 진리의 "절반"만을 드러냈고, 여전히 거기에는 분석되고 또 비판되어야 할 "징후"들이 함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저는 어떠한 사안에 관해서든지 비판적인 자세를 유지하고 그것을 분석하는 철저함에는 반대하지 않지만, 오히려 이러한 특정한 사안에 한정해보자면, 하필 최근에 이뤄졌던 김예슬씨의 선언과 그에 결부된 명문대생 내부의 자기비판적 목소리들을 타박하는 것이야말로 "더 징후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식의 비판은 실천적으로도, 그리고 이론적으로도 "틀렸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분석은 "학벌사회"의 기득권이 "왜 나쁜지"에 관한 반성을 결여한 채, 단지 겉모습만을 그럴싸한 태도로 비판하는 것에 그치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 의도는 선량하지만, 실제로 그 비판을 제기한 논자들의 이론적-담론적 책임을 저는 이들에게 묻고만 싶습니다.

 

 

 

 

  예전에 김상봉 씨 역시 <학벌사회>라는 저서를 통해, 이와 비슷한 문제제기를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의 학벌 기득권 구조가 왜 문제인지를 보다 철학적-윤리적 관점에서 분석한 이 저서는, 학벌사회가 진짜로 "나쁜" 이유는, 그것이 학문적-비판적 영역에서 가능한 진정한 의미에서의 "주체성"을 되려 억압하고 말살하는 사회적 구조로서 존속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 그는 칸트의 철학으로 돌아가며, 진정한 지적-도덕적 주체성(자율성)이란 바로 집단 외부에서 마주치는 "타인"을 "목적으로서" 대우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논의에서 출발합니다. 우리가 흔히 전통적인 윤리로 착각하곤 하는, 집단주의적 관점은, 오히려 오직 타인을, 그리고 타인이 처한 사회적 조건을, 수단으로서만 간주하는 이기적 관점에 불과합니다. 그 안에 "나"-"우리"라는 축을 중심으로한 한 폐쇄적 세계관만이 있을 뿐, 그러한 축 너머의 윤리적 요청을 사고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오늘날 대학사회가 강요하는 것도 그러한 폐쇄성 뿐입니다. 오늘날 사회적 문제에 무관심하며 이기주의적이라고 비난받는 학생들 역시 사실은 자신의 학교 이미지에 대해서는 굉장히 전전긍긍해 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런 연유에서 지난 2006년에는 고대학생들이 출교생들을 비난하기도 했고요. 그러나 이것은 조금도 윤리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사회적 패륜"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나르시즘적 사고만을 강요하는 오늘날의 패거리 문화를 극복하는 것에 진정한 "자율"이 있습니다. 김상봉씨는 이러한 자율성을 중심으로 한 칸트적 주체성을 좀 더 한국적인 개념으로, 예컨대 단순히 홀로-주체성으로만 아니라 서로-주체성 혹은 공동-주체성이라는 사회적 주체성으로까지 확장시켜 볼 것을 제안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칸트와 김상봉씨가 제기하는 문제의식은 똑같습니다.

 

 

 

 

  여기서 역사적 사실로 돌아가보자면, 칸트 역시 헤겔과 같이 국가관료와 사회리더들을 양성하는 김나지움의 명예로운 "국가교수"의 위치에 있었던 게 아니라, 쾨니히스베르크에 강의했던 "지잡대" 교수였습니다. 이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런 프레임 자체가 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학문적 이성에 관해 '명문대와 지방대', '수도와 지방'을 분류하는 사고방식 자체가 당시로서는 낯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칸트가 그의 철학적 작업을 통해 환기한 지적-도덕적 주체성과 그에 결부된 보편적 책임은, 그러한 식의 사회적-제도적 위계를 통해 구별될 수 없다는 견해가 근대유럽의 계몽적 유산에 힘입어 널리 확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분명 그러한 프레임이 존재하며, 실제로 그러한 프레임에 따라 논자들의 학문적 권위가 더 실리기도 하고 혹은 더 저평가되기도 합니다. 김상봉 씨가 전남대가 아니라 서울대에서 수많은 후학들과 연을 맺은 고명한 교수님이셨다면 그의 문제제기가 더욱 힘을 얻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단적인 사실이며, 김상봉씨가 아무리 철학적 진리를 환기하더라도, 그러한 사태는 이성적 비판으로 결코 해소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칸트가 사고한 "자유"의 문제와 "주체성"의 문제는, 칸트가 살던 시대와 지금 우리나라의 정세와의 격차 때문에라도 더욱 더 철저하게 생각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말하자면 학벌사회의 문제제기는, 그 안에서 과연 본연의 학문적-비판적 자유가, 특히나 오늘날 전면화된 후기-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자본"에 대한 학문적-사회적 자율성이, 가능하겠냐는 가장 근본적이고 철저한 지점으로까지 파고들어야 합니다. 이 문제의식을 우회한다면 학벌사회에 대한 비판은, 오히려 학벌사회 그 자체와의 최악의 "공범자"로 드러날 수 밖에 없습니다.

 

 

 

 

  저 역시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에서 명문대-비명문대 프레임을 우회할 수 없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관한 문제의식들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저는 그것이 진짜로 "나쁜" 이유를 원리적으로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평등"이라는 아주 중대한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학벌 기득권에 대해 말할 때, "평등"의 문제를 아주 자명하게 취급하곤 합니다. 예컨대 명문대생이 그럴싸한 대자보 하나 걸으며 사회적 이슈를 창출할 때, 지잡대생은 오늘도 잡일을 처리한다는 식의 폭로들은, 평등에 관한 매우 손쉬운 단정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결국 문제는 명문대생들이 사회경제적 기득권을 독점하며, 비명문대생들은 그 기득권 외부에 머물러 있는 게 전부라는 식이 되어버립니다. 여기에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아비투스(문화자본)"에 대한 논의를 끌어들인다면, 이야기는 더욱 그럴싸해집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이것은 진정한 급진적 "평등"을 향한 투쟁을 우회하는 알리바이 그 이상이 아닙니다. "평등주의"에 관한 급진적인 요구들이 오늘날의 진정한 "정치적 문제"를 이룬다는 것에 동의한다면, 우리는 이 문제를 좀 더 생각해봐야 합니다. 예컨대 자크 랑시에르라는 프랑스 철학자는 실질적인 "평등"이 이런저런 사회경제적 조건 때문에 "유예"되었다는 식의 문제제기를 통해서는, 결코 "평등"을 주장할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정치적 주체들 간의 "평등"은, 지금-당장의 진리로서 이미 증명된 것으로 간주되는 한에서만 요구될 수 있습니다. 랑시에르가 그의 저서에서 역사적 사례를 인용하듯, 19세기 프랑스 노동자들이 자신의 평등을 주장했던 것은, 자신의 평등권이 침해되어서 실제로 그것이 훼손되었다는 식의 사회학적 폭로를 통해 뒷받침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아비투스"에 관한 사회학적 담론도, "피에르 부르디외"도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평등의 논거로 든 것은 그들의 평등권을 명시한 "헌법"과 "노동법"이었습니다. "노동법"을 뒤적이고 큰뜻을 품었던 전태일 열사가 바로 그러했듯이, 그들 역시도 그들이 직면하는 사회경제적 어려움에서 저 먼 곳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는 평등의 당위를 찾았던 게 아니라 , 그들이 지금-여기의 단결을 통해 스스로를 어엿한 주체로서 대우할 것을 요구하는 행위 안에서, 그들 스스로가 이미 평등하다는 '증명'을 찾았던 것입니다.

 

  어디엔가 평등이 있다. 이것은 말해졌고, 씌어졌다. 따라서 이것은 입증될 수 있어야 한다. 하나의 실천은 바로 거기에 바탕을 들 수 있으며, 이 평등을 입증하는 것을 자기 자신의 과제로 삼을 수 있다.

  어떻게 하나의 문장을 입증할 수 있을까? 그것은 본질적으로 우리가 우리 자신을 만드는 행위를 통해 가능하다. 이 행위들을 하나의 증거로, 하나의 근거 체계로 조직한다.

(중략)

  사회적 평등은 단순한 법-정치적 평등도 아니고 경제적 수준 맞추기도 아니다. 그것은 법-정치적 기입/기록 속에 잠재적인 상태로 있는 평등이 일상생활 속으로 번역되고, 자리 옮기고, 극대화한 것이다. 이 사회적 평등이 평등의 전부는 아니다. 그것은 평등과 불평등의 관계를 살아가는 방식, 그것을 살아가고, 동시에 그것을 긍정적으로 자리 옮기는 방식이다.

 

자크 랑시에르,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中

 

 

 

  저는 이렇듯, 자신의 행위 안에서 평등에의 증명을 구성해냈던 프랑스 노동자들의 사례에서, 그리고 이와 비슷한 전태일 열사의 사례에서, 다시 "주체성"과 "보편적 책임"의 문제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평등의 문제는 결코 평등한 사회적 재분배의 문제 안으로 해소되지 않으며, 오히려 그러한 사회경제적 문제틀을 넘어서는 운동 안에서 급진적으로 제기되어야 합니다. 본래 대학이라는 학문적 기관 안에서 가능한 주체성은, 바로 그 대학 너머에 존재하는 이웃들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서" 대우할 가능성에 대한 비판적 물음들을 제기하는 것에 있습니다. 쾨니히스베르크 안에서 유럽 전체의 정세를 사고했던 칸트의 후기 저술들도 바로 그러한 물음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대학 안에서 가능한, (학벌사회를 극복할) 진정한 평등주의적 요구들은 이러한 비판적 물음 안에서 사고되어야 합니다. 그런 물음이 가로막힌 상황에서, 우리는 '적'을 정확하게 정해야 합니다. 예슬씨에게서 모종의 학벌주의적 혐의를 발견하는 시도들은 이러한 점에서 "평등"의 문제와, 심지어 학벌사회를 극복할 "주체성"의 문제를 전혀 잡아내고 있지 못합니다. 반드시 고려대 경영대를 거부하는 것에서가 아니라, 다른 수많은 사례들에서 그에 못지 않은 용기와 주체성을 발견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 사실이 그녀가 내렸던 결단의 의의를 반드시 무화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녀의 용기는 명문대-비명문대 구분을 넘어서 확산되고 옹호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선은 왜 우리 사회가 명문대와 비명문대라는 프레임으로 나뉘었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현실의 한국 대학들이 유럽의 유서 깊은 대학기관들과 다른 역사적 조건 안에서 출현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학벌사회를 구성하는 "명문대-비명문"대라는 프레임은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대학제도를 서둘러 한국사회에 "이식"한 결과로 나왔습니다. 대학이 만일 학문기관으로서 오랜 역사 동안 자연스레 제 기능에 충실했다면, 대학들은 아마도 저마다의 독특한 학풍으로서 평가받되, "명문대-비명문대"와 같은 위계에 의해 평가받지 않았을 것입니다(여기서 사립대의 자율성을 논하는 사학들의 더러운 위선이 드러납니다). 외국의 "명문"대학이라는 것도 사실은 오랜 기간 축적된 학문적 연구와 그것이 지역사회에 기여했던 역사 때문에 자연스레 명성을 얻었던 거지, 우리처럼 대관고작과 벼락부자들을 얼마나 배출했느냐에 달려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우리에게 대학을 평가할 척도는 학문적-윤리적 기준에 있었던 게 아닙니다. 우리의 대학현실은 전혀 다릅니다. 대부분의 학교사회들은 주변 지역사회 상권과 복지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자본의 이윤에 휘둘리는 학생들의 과소비 패턴도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본연의 학문연구 대신에 외부 자본을 얼마나 유치하는지로 그 대학의 경쟁력을 판단하는 관성이 자리잡았습니다. 대단히 절망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절망하기 이전에 이러한 정황들이 오늘날의 명문대-비명문대 프레임을 결정한 주요한 역사적 원인임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오늘날의 명문대 프레임 이면에 존재하는 사회적 물화과정을 비판하지 않는다면, 단지 명문대에 관한 사회적 표상들을 비판하는 것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습니다. 일례로 "민족은 상상의 공동체"라는 베네딕트 앤더슨의 비판도, 세계 자본주의 내에서 지역단위들을 민족국가로 분절해낸 역사적 과정을 생략한다면 그것은 아무런 효력을 지니지 못합니다. 같은 교훈은 학벌사회 비판에 관해서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오히려 그러한 역사적 현실 때문에라도, 현실적-역사적으로 존재해왔던 대학의 모습과 다른, 대학의 "이념"에 관해서 바로 그 대학의 주체인 우리 자신들이 먼저 생각을 해야합니다. 그러한 이념이 지금-당장 한낱 가상에 불과하다고 하더라도,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러한 이념을 지금-당장 현실화시키는 방안들이 우리들 가운데 주체적으로 모색되어야 합니다. 게맛살님은 <두 개의 기원, 그리고 광야>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두 개의 서로 경합하는 (역사적) 기원과 ‘광야’의 회귀라는 경향성은 종교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지금은 근대교육 체계의 정점인 대학의 상이한 기원에 대해 지적하려 한다. 대학은 원래 12세기경 교회의 부속기관으로 출발하였으면서도 꾸준히 교권으로부터 독립하려는 세속 기관으로 발달하였다. 그러나 대학이 독립을 추구한 것은 교권에 한정되지 않았고, 교권과 경쟁 중이던 왕권, 시민사회의 성립 이후에는 금권에 대한 자율성에까지 이른다. 외부의 권력에 종속되지 않기 위해 대학은 치열한 알력 사이에서 균형추 역할을 맡아왔고 또한 그럼으로써 고유한 목적성과 입지를 다지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서의 ‘목적성’이 바로 전인교육과 전문교육, 혹은 그 각각에 대응하여 시민교육과 국민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다. 김상봉 교수는 그의 저서 『학벌사회』에서 전인교육은 보편적 인간성의 이상을(즉 근대의 공적 인간상인 ‘시민’을) 실현하기 위한 교육으로서, 영역의 구체로 철학교육・도덕교육・예술교육・체육교육을 가진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다른 한편인 전문교육은 학생의 개성적 인격 실현의 실질적 조건인 직업 소질 계발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이때 한 개인이 직업 활동을 한다는 것은 국부(national wealth)와 국익(national interest)의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에 국가의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관심과 개입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전인교육이 시민교육으로 등치될 수 있듯 전문교육은 국민교육과 등치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생각한다면 교육에 있어서의 시장논리 확대는 국민교육의 측면을 강화시키고 시민교육을 압박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이처럼 하나의 기원이 다른 하나의 기원을 구축(驅逐)할 때, 광야의 이념이 회귀한다. 더 직접적으로 말해 제도 바깥에서 구축당한 한 기원을 실현하는 운동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오늘날은 지리멸렬해지고 말았지만 전세계적으로 반전운동이나 독재타도운동에 대학생들이 적극 가담해온 역사가 그것을 말해준다. 문제는 그 지리멸렬을 어떻게 뚫고 나갈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학생 신분은 학적을 유지하는 한에서만 유효하기 때문에, 학교 자체가 저항의 대상인 금권이나 정치권력에 포섭 당했을 때 학생운동은 힘을 잃게 된다. 학생인 이상 학교에 의해 관리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학교가 고압적인 태도를 취하는 이상 학생운동은 결코 ‘귀엽’거나 ‘성가신’ 것 이상이 될 수 없다.

  만약 당신이 대학생이라면, 지금의 스펙을 가지고 지금 대한민국의 위계질서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에 대한 그럴싸한 냉소를 던질 것이 아니라, 대학이 학문기관으로서 떠맡을 수 있는 본연의 학문적-비판적 역할을 어떻게 재구성할 수 있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고민들을 먼저 해야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고민을 위해서는 예슬씨가 결국에는 자퇴라는 자신의 선택에서 발견한 "광야"를 우리 스스로가 찾아야 합니다. 결국 명문대 독점 현상은, 그 학문적-비판적 기능에서 일탈한 채, 외부의 자본과 국가의 종속된 위치로, 입시기관으로, 취업알선시장으로 전락한 "결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현상의 "근본원인"인 것만은 아닙니다. 그러한 사회경제적 물화과정으로 해소될 수 없는 "광야의 이념"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이런 선후관계를 먼저 따져봐야, 명문대생이 스스로의 기득권을 포기할 수 있는 방안과, 비명문대생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방안이 한꺼번에 모색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과정을 생략하고 단순히 학벌기득권에 대한 당위적인 비판만을 내놓는다면, 그것은 학생사회에 대한 개입을 포기하는 알리바이로밖에 활용되지 못할 것입니다.

출처 : 비평고원(Critical Plateaux)
글쓴이 : 박가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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