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좌파 지식인들의 유명세

김남시 2009. 3. 29. 01:27

며칠전 베를린 자유대학에 Judith Buttler 강연을 왔을때, 대학측은 대학 건물에서 가장 강의실을 그녀의 강연을 위해 내주었고, 그것도 모자라 다른 대형 강의실엔 모니터를 통해 그녀의 강의 장면을 실시간으로 중개해 있게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틀러의 강연이 시작되기 30분전에 이미 모든 강의실 좌석은 물론 복도와 중간계단들엔 더이상 아무도 지나가지 못할 정도로 많은 청중들로 가득차버렸고, 거기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강의실 밖에서 기다리거나,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이러한 현상은 작년 겨울 훔볼트 대학에 알랭 바디우가 왔을때에도  마찬가지였다. 훔볼트 대학 본관 Senatsaal에서 열린 그의 강연장은 Senatsaal 문을 개방한지 5분도 되지 않아 발디딜틈 없이 차버렸고,  운좋게도 강연장 안쪽 의자에 자리잡은 사람들은, 강연이 끝나고 많은 사람들이 빠져나갈때까지 옴짝달싹 하지 못한 기다려야만 했다. 유명 지식인이나 이론가들의 강연장이 마치 유명 연예인의 공연장과 유사해져 버리는 이러한 모습은 몇년 베를린에서 열린 발터 벤야민 국제 심포지움에 조오르지오 아감벤이 온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뒤에도 마찬가지로 펼쳐졌다. 결국 마지막 순간에 펑크를 내버린 아감벤을 직접보고 싶어하는 청중들로 인해 며칠동안 열렸던 심포지움 프로그램 유독 날의 모든 좌석권만 일찌감치 매진되어 버렸다.


이러한 모습은 한국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고 한다. 얼마전 쟈크 랑시에르가 방한했을 성황을 이루었던 모습, 그리고 세계적으로는 아니지만 한국에서는 이들 못지않은 유명세를 누리고 있는 좌파 지식인 진중권이 강연을 했을 연예인만큼이나 유명한 그를 보려고 몰려든 청중들은 엄마 손을 잡고 7 어린 아이부터, 대학생, 30~40 아주머니와 직장인까지 망라했다고 한다.  

 

닌텐도는 그냥 나오지 않는다” [진중권 마들연구소 특강 후기] 기술-예술-인문 삼각 컨소시엄 필요

뜨거운 박수와 환호, 웃음소리, 꽃다발과 사인 공세, 포토타임까지. 공간을 채운 550 사람들의 조합은 얼마나 다양한지 엄마 손을 잡고 7 어린 아이부터, 대학생, 30~40 아주머니와 직장인까지.

이곳에 등장할 그에게는국민오빠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을 정도라고나 할까. 그가 등장하기 시간 전부터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한 공간은 이후 30 만에 준비된 좌석이 동이 났다. 늦게 도착한 청중들이 바닥에 자리를 마련한 탓에 공간은 콩나물시루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유명한 연예인 공연이었냐고? 통상적인연예인 아닌 한자 그대로재주를 펴는 사람( , 재주 , 사람 )’ 연예인이라고 한다면 그도 연예인으로 분류될 있을 . 열기만 보자면 진보진영의 토론 대표주자 진중권(중앙대 겸임교수, 이하 교수) 강연장은 유명 가수의 공연장과 다를 없었다.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는 그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자유라는 말이 떠오른다며 그를 소개했다. 좌파이면서 좌파로부터 자유로운 사람, 관성적 행위를 누구보다 날카롭게 비판할 있는 사람. 시대 지식인상을 가장 보여주는 사람이라고.

대표의 소개 청중의 우뢰와 같은 박수와 환호 속에서디지털과 문화라는 주제의 강의가 시작됐다. 이번 강의는 2 4 서울북부고용지원센터 10 대강당에서 열린 마들연구소(이사장 노회찬) 명사초청 6번째 특강이었다.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12550

 

현존하는 사회, 정치적 혹은 성적 질서에 대해 비판적인 유명좌파 이론가들에 대한 과열된, 포풀리즘적 관심은 우리에게 불편하고도 역설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들의 사회 비판적 이념과 이론에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이렇게 많은 청중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그들이 말하는 방식대로 변하지 않는 것일까? 사람들이 유명한 좌파 이론가들을 면전에서 직접 접하고자 하는 욕구는 이론가들의 사회 비판적 태도와는 어떤 관련을 맺는 것일까?  예를들어 보수 우파 인물 조갑제가 강연회를 한다면 이렇게 많은 청중이 모일까? ‚사회 비판적’, ‚좌파적이론가와 지식은 보수적이고 우파적인 사상보다 하고 멋있게 보이는 하나의 모드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발터 벤야민이, 독일 낭만주의에 대해 이야기하듯이 좌파의 사회비판적 이념은 그것의 위험스럽고 살아있는 정신으로부터 탈색되어, 사람들이 기꺼이 자신의 것으로 삼고 싶어하는 하나의 포즈 Pose’ 되어버린 것일까? (GSII/1. 45) 혹은 좌파적 이론은 마치 광고에 등장하는 게바라와 소비 상품이 되어버린 맑스처럼 하나의 심미적인 소비품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