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법 질서에 대하여

김남시 2009. 1. 27. 18:12

 

하나의 법질서 Rechtsordnung 어떤 보편적인 이념이나 가치에 근거해 자신의 정당성을 갖게되는 것일까? 특정한 하나의 질서, 예를들어 민주주의적 질서는 자유 혹은 평등이라는 보편적 이념/가치와 없이 결합되어 있으며 자유와 평등은 바로 법 질서 내에서, 질서를 통해서만 구현될 있고, 따라서 그를 위해선 어떤 일이 있어도 바로 질서만을 고수하고 유지해야 하는 것일까?

 

주지하듯 맑스주의는 하나의 질서, 특히 부르조아적 법질서를 이런 보편적 이념이나 가치에 근거해 정당화시키려는 것을 비판하였다. 부르조아적 질서란 모든 계급을 초월해, 모든 계급에게 적용되는 보편적 가치나 이념에 근거해 있는 어떤 초월적 질서가 아니라, 부르조아 사회 지배 계급의 이해관계에 상응해 그를 보장시켜 주기위한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일 뿐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법이 부르조아적 소유 관계를 어떤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것처럼 옹호하듯, 하나의 질서는 계급 사회의 이데올로기에서 떨어져 나온 어떤 보편적, 일반적인 삶의 규칙과 규범이 아니라 사회의 계급지배를 정당화하고 유지시키기 위한 도구이다.

 

1919 혁명 이후 러시아 소비에트 공화국 법은, 부르조아 국가가 자신의 법질서를 보편적 이념이나 가치에 근거지우려는 것과는 구별되게, 질서에 대한 이러한 계급적 관점을 분명히 하고있다. 거기에선 Recht이란 지배 계급의 이해관계에 상응하고 지배계급에 의해 조직된 폭력에 의해 유지되는 사회적 관계의 체계 (혹은 질서)라고 정의되어 있다. (Petr I. Stučka : Die revolutionäre Rolle von Recht und Staat, S.65.) 소비에트가 다른 자본주의 국가와는 달리 스스로가 노동자/농민 계급 지배하는 사회임을 공공연히 천명하고 있었던 상황에서 법에 대한 이러한 정의는 아무 문제될 것이 없었다.     

 

질서에 대한 이런 맑스주의적 계급적 관점이 아니더라도, 하나의 질서의 정당성을 자유나 평등과 같은 초월적 이념이 아니라 그것의 사실성 Faktizität 에서 찾고자 하는 생각은 발터 벤야민에게서도 발견할 있다. 발터 벤야민에 의하면 법적 질서는 어떤 이념과 가치에 대한 모든 사람들의 자발적 동의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폭력 의거하고 있다. 프랑스 혁명같은 부르조아 혁명이건 러시아에서와 같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이건 하나의 질서는 이러한 법을 세우는 폭력 rechtsetzende Gewalt’에 의해 수립되고 그렇게 세워진 새로운 법질서는 그 법을 유지시키는 폭력 rechtserhaltende Gewalt’ 에 의해 유지된다.

 

벤야민은 이러한 생각을 역사적으로 일반화 시키는데, 그에 의하면  하나의 질서가 그와는 다른 질서로 이행되고 변화되어온 인간 사회의 역사는 새로운 폭력이나 이전에 억압되었던 폭력이 지금까지의 법을 세우는 폭력 승리를 거두고 새로운 법을 그것 역시 새로이 몰락할 정초해온 과정(Walter Benjamin : Zur Kritik der Gewalt, GS II-1, S.202) 다름 아니다.

 

하나의 질서가 어떤 자발적 계약이나 이상화된 합의가 아니라 폭력을 통해 세워졌다고 해서 그것이 정당성을 갖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질서의 정당성은 그것이 현존하고, 유지되며, 작용한다는 사실성,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어떤 이유에서건 사람들이 질서를 자신들의 행동을 규정하는 규범으로 받아들여 따르고 있다는 바로 사실에만 의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법의 정당성은 법의 이념이 아니라 그것의 사실적 유효성 Geltung에서 나온다. 1918 11 혁명을 통해 세워진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헌법은 이를 분명히 정식화시키고 있다. „모든 혁명은 스스로 새로운 법의 원천이고자 하고, 의지를 관철시키는데 성공하면 새로운 법의 근원이 있다“(Weimar Reichsverfassung).

 

질서의 정당성이 어떤 보편적인 초월적 가치나 형이상학적 이념이 아니라 그것이 질서로써 자신을 확립하는데 성공하느냐 마느냐라는 사실성 Faktizit­ät 근거하고 있다는 이러한 생각은 규범적이고 가치적인 것이 아니라 주어진 존재 Seinsgegebenheit 사실성에 법을 근거지우려는 실증주의 Rechtspositivismus 의해 이미 주창되었던 것이며, 오늘날 우리가 속에서 살아 가고있는 질서의 근거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헌법 1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규정은 대한민국의 질서와 권력이 어떤 신적 이념이나 하늘의 혹은 형이상학적 가치가 아니라, 국민들이 그를 따르고  있다는 바로 사실에만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아무렇지도 않게 자주 이야기되는 규정엔 경우에 따라선 매우 폭발적인, 그러나 모순적인 뇌관이 숨겨져 있다. 대한민국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면 국민에게는 새로운 질서와 새로운 권력을 수립할 권리가 주어져있다. 그건 가깝게는 선거 통해 대통령과 정치인들을 선출할 있는 형식적 권리를 이야기하지만, 거기엔 벤야민이 말하는 법을 세우는 폭력 통해 완전히 새로운 질서와 권력을 수립할 권리도 암시되어 있다. 후자의 권리를 실행하기 위해선 그러나, 국민들의 법을 세우는 폭력 현재 질서가 지니고 있는 법을 유지하는 폭력 맞서 승리할 정도로 강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현존하는 질서와 권력은 그것의 사실적 유효성을 유지하며, 그를통해 계속 자신의 법적 정당성을 지니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