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찌는 Nationalsozialism 곧, 민족 사회주의의 약자다. 히틀러 시대의 독일국가는
독일인들에겐 그야말로 ‚인민의 국가’였다. 나찌는 국민들이 국가가 바로 그들 – 물론 아리안 인종의 독일인들! –
을 위해 존재한다는 걸 실물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국가 시스템을 조직하고 운영했고 이를통해 대다수 독일 인들의 자발적인
충성과 지지를 얻어낼 수 있었다.
전쟁에 참여했던 군인들에게 히틀러의 국가는 평상시 그들 봉급의 73 퍼센트를 지급했다. 그건 당시 영국이나 미국 군인들에 비해 두배가 많은 수치였다. 나찌 국가는 군인과 그들 가족으로 하여금 오히려 평시보다 실물적으로 더 풍족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배려했으며, 이 모두를 점령국과 유대인으로부터의 효과적인 착취를 통해 충당했다.
전쟁에 참여한 독일 군인들은 공식적으로 한달에 100 마르크, 크리스마스 땐 200 마르크까지를 고향으로 송금할 수 있었다. 나아가 그들은 점령지에서 월등한 환율가치를 갖게된 독일 마르크화로 그곳의 모든 물건들을 그야말로 „똥값“에 구입할 수 있었고, 그를 특별히 독일 군인들을 위해 마련된 소포 열차를 통해 한달에 2,5 Kg까지 독일에 있는 가족들에게 보낼 수 있었다. 1941년 1월부터 독일 관세청은 군인들이 가족에게 보내는 소포에 대한 관세를 면제해 주었다. 이를통해 남아프리카의 신발, 프랑스의 실크, 주류와 커피, 그리이스의 담배, 러시아의 꿀과 햄, 노르웨이의 청어, 루마니아, 헝가리 등의 특산품들이 수없이 전쟁 중인 국경을 넘어 독일에 있는 군인 가족들에게 전달되었다.
고향에 남아있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전쟁 전엔 오히려 접해보기 힘들던 장난감, 옷, 유럽 각국의 특산품과 생필품 등을 손쉽게 보낼 수 있다면 어느 아버지가 그를
마다하겠는가. 당시 군인으로 참전했던 작가 하인리히 뵐은 독일에 있는 아내에게 보내는 소포에
„당신에게 무엇인가 보낼 수 있게 되어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모를거요“라고 썼다. 이를통해 군인들은 자신과 가족들을 배려해주는 이 고마운 국가에 대해 마음
속으로부터의 충성을 다짐했다. 그리고 나찌 점령지의 국민들은 부족해진 생필품으로 생명의 위기를 겪어야
했다.
독일에 남아있는 군인 가족들을 위해서도 나찌국가 독일은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미 남편과 아버지가 매달 전선에서 부쳐주는, 평시엔 접해보기 힘든 물건들로 기뻐하고 있던 이들에게 나찌 국가는 폭격으로 파괴되거나 부서진 집과 가구, 그외 다양한 생활용품 등을 거의 무상으로 나누어주었다. 1943년 점령지였던 프라하엔 독일인들에게 폭격으로 상실한 가구와 생활 용품들을 재충당 해주기 위한 폭격피해 복구를 위한 저장창고가 설치되는데, 여기엔 4,817 개의 침실가구, 3,907개의 부엌가구, 18,267개의 옷장, 25,640개의 소파, 1,321,741 개의 부엌과 가정용품, 1,264,999 개의 침대보와 옷, 그 밖의 물건들이 있었고, 이는 전쟁 중 각 독일 도시의 관청들이 개최했던 경매를 통해 헐값에 독일인에게 분배되었다.
이 모든 물건들이 다
어디서 나온 것일까. 예측할 수 있듯 이것들은 독일과 다른 유럽국가에서 쫓겨난 유대인들의
것이었다. 살고있던 집을 떠나 수용소로 이송되는 유대인들에겐 일인당 50 킬로그램까지의 짐만 허용되었고, 그래서 그들은 집과 가구, 나머지 살림들을 모두 남겨두고 떠나야 했다. 민족 사회주의, 나찌 국가는 1941년 8월 베를린,
쾰른, 프랑크프르트, 함부르크 등에서
수용소로 이송된 8천명의 유대인과 열흘 후 브레멘, 빌레펠트, 뮌스터, 하노버 에서 이송된
13,000명의 유대인들의 남은 재산을 몰수하여 소위 „폭격피해를 입은 독일인민의
소유“로 만들었다. 그나마 급히 짐가방에 싸 넣고 갖던 나머지
물건들도 그 주인들이 수용소 가스실로 사라지고 난 후엔 독일인들에게 귀속되었다. 그리하여,
붕대, 가루 및 액체 비누, 면도칼, 면도크림, 샴푸, 머리기름, 성냥, 향수, 구두약, 칫솔, 담배, 차, 커피, 카카오, 쏘세지, 초코렛 등의 물건들은 당시 독일 적십자가 운영하던 군인 기숙사와
군대용품 저장고로 이송되었다. 죽은 유대인들의 물건들이 전시 독일인들의 편안함 삶과 그를통한 나찌 국가의
공고화를 위해 활용되었던 것이다.
역사학자 알리의 이 책은 나찌 독일을 겪은 독일인들의 전후 책임문제에 대한 공방에 새로운 차원을 열어준다. 전후 독일인들은 자신들 역시 히틀러 독재의 피해자로 규정함으로써 인류사에 유래가 없는 나찌 전범의 도덕적 책임의 무게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이는 또한 영, 미, 불, 소련 연합군을 나찌 독재로 부터 자신들을 해방시켜 준 해방군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동시에 이루어졌다. 전후에 이루어진 전범 재판은, 한나 아렌트가 표현하듯 „전체는 유죄이나 개인들은 무죄“라는, 새로운 차원의 윤리적 상황을 만들어내었고 그 속에서 ‚개인으로서의 독일인들’은 스스로를 ‚전체로서의 나찌’와는 무관한, 개인적 희생자로 규정하려 했다.
그러나,
알리가 이 책을 통해 보여주듯, 나찌 국가의 독일인들이, 피점령지 국민들과 유대인들의 희생으로부터 생겨난 사회적 이익의 긍정적 수혜자였다면, 그리하여
나찌와 히틀러에 대한 그들이 지지와 봉사가 단지, „국가 조직에서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한 것일
뿐“이 아니라 저 국가 시스템이 조직적으로 제공하는 만족과 편안함의 긍정 속에서 나온 것이라면 이제
전쟁책임을 둘러싼 윤리적 문제는 새로운 차원에서 제기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로부터는
‚전선에서 배달되는 아버지의 소포에 대한 기대감’으로 전쟁을 기억하고
있는 전후세대들도 그렇게 많이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다.
나아가 이 책은 민족주의와 결합한 독재를 바라보는 윤리적 질문을 던진다. 자국 국민의 안녕과 삶의 만족을 보장해 주었던 독재자는, 타국 국민들과 자국내 소수 인종의 희생이 있긴 했어도, 그 국민들에겐 „훌륭한“ 통치자이지 않을까. 오늘날 독일인들 사이에 적지않게 잠재되어 있는 나찌 시대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바로 이러한 민족주의적 실용주의에 근거하고 있다. 어쩌면 그건 또한 부시를 재선시킨 대다수 미국 국민들이 공유하고 있는 가치인지도 모른다.
Götz Aly : Hitlers Volksstaat. Raub, Rassenkrieg und nationaler Sozialismus, S. Fischer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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