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스크랩] (2008년 1월 22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김남시 2008. 1. 21. 21:12

 

갈릴레이의 망원경

 

1610 1 파두아 대학 수학 교수였던 갈릴레이는,  2 네덜란드 안경사Hans Lippershey (1570-1619) 프랑크프루트 박람회에 처음 소개했던 망원경의 원리에 맞추어 자신이 직접 제작한 망원경으로 하늘을 들여다 보았다. 이를통해 그는 망원경이라는 시각적 도구로 하늘을 바라다 최초의 인간이 되었을 아니라, 가시적인 것과 가시적인 것을 나누던 기존의 분명한 구분을 무너뜨림으로써 우리에게 거대한 가시적인 것들의 세계를 열어준 혁명적 변화의 선도자가 된다.

 

 

자신이 망원경을 통해 관찰했던 놀라운 사실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갈릴레이는 같은  3 서둘러 Sidereus Nuncius (새로운 별들에 대하여) 출간하고 이를 자기 후원자인 메디치가에 헌정하였다. 이 책 제목이 암시하듯 그가 망원경을 통해 인류 최초로 보게 되었던것은 무엇보다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별들이었다. 맨 눈에는 보이지 않다가 망원경이라는 시각적 도구를 통해 비로소 보여지게 된 이 새로운 별들에 감격하면서 갈릴레이는 다음과 같이 쓴다. „우리의 자연적 시각 능력을 통해 오늘날까지 관찰될 수 있었던 많은 별들에다 지금까지 한번도 지각되지 못했던 수많은 또 다른 별들을 추가하고 이렇게 눈 앞에서 바라 본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이로써 이전에 알려진 별들의 숫자는 10배가 넘게 늘어나게 되었다.“ [i]

 

그러나 갈릴레이가 망원경을 통해 본 것은 새로운 별들 만이 아니었다. 갈릴레이의 망원경은 그에게 그때까지 모든 세상 사람들이 보아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달도 가시화시켜 주었다. 고대부터 유리처럼 매끈하고 부드러운 표면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져왔고 또 모든 사람들에 의해 그렇게 보여져 왔던 달을 갈릴레이의 망원경은 지구 표면과 비슷한 울퉁 불퉁한 웅덩이와 거친 언덕들로 뒤덮여 있는 모습으로 보여 준 것이다.

 

 

 

갈릴레이가 자신이 망원경을 통해 표면의 그림을 그려 넣으면서 모든 것들은 며칠전, 신의 배려를 통해 고안된 렌즈들을 통해 발견되고 관찰 [ii]되었고, „ 관찰을 통해 우리는 달의 표면이 부드럽고 매끈하지 않고 오히려 거칠고 울퉁불퉁하다는 것을, 곳이 지구 표면처럼 온통 거대한 융기, 깊은 분지와 굴곡들로 뒤덮여 있다는 사실을 감각적 확실성에 의거해 인식할 있다[iii] 라고 말할 우리는 그가 망원경이라는 새로운 시각적 도구에 자연적 감각의 확실성을 부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있다. , 그는 망원경이라는 도구가 보여주는 달의 모습이 우리의 자연적 눈으로 바라볼 때의 그것 만큼이나 확실한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당시로서는 매우 대범하게도, „망원경을 통해서 보면 대상들이 자연적인 시력으로 관찰할 때보다 거의 이상 크게 보이고 서른 이상 가깝게 보인다 [iv]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자연적 시선과 시각적 도구

 

그런데, 당시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그것은 무엇보다 우리의 자연적 시력에 보여지는 대상과 그를 망원경을 통해 보았을 보여지는 차이에서 생겨났다. 갈릴레이가 망원경을 통해 있었던별들은 우리가 눈으로 아무리 하늘을 뚫어지게 들여다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그의 망원경이 그에게 보여주었던 거칠고 울퉁 불퉁한 표면은 수백년 동안 인류가 보아왔던 매끈하게 빛나는 표면을 달의 모습과는 너무도 판이하다. 말하자면 갈릴레이가 망원경을 통해 보았던모든 것들은 갈릴레이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이미 수백년 동안 자기 눈으로 직접 바라보고 확인해왔던, 금방이라도 다시 확인할 있는 하늘의 모습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혁명적 발견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갈릴레이를 있지도 않은 별들과 표면의 웅덩이를 보았다 주장하는 환각증 환자 취급을 하거나, 아니면 점잖게, 망원경이라는 믿지못할 도구가 왜곡시켜 보여준 하늘의 모습을 진짜 하늘의 모습이라고 믿는 나이브한 과학자라고 비판하게 [v] 무리가 아니다. 

 

오늘날의 우리는 망원경, 현미경은 물론 이후에 개발된 X-레이, 초음파 검사기, 단층 촬영기 등과 같은 시각적 도구가 보여주는 대상의 모습이 사실상 대상의 진짜 모습이라고 추호의 의심도 없이 믿을 만큼 계몽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시각적 도구들이 우리의 자연적 시각 능력을 , 배로 증폭시켜주는 인간 감각능력의 확장에 다름아니라고 여기며, 그를통해 우리가 시각적 도구로 바라보는 대상의 모습은 자연적 시력을 통해선 보이지 않던 대상의 본질적 모습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vi]

 

 

 

그런데 여기엔 이보다 근본적인 하나의 믿음이 전제되어 있다. 그것은 세상엔 우리의 자연적 시력엔 보이지 않고 시각적 도구를 통해서만 가시화될 있는 수없이 많은 대상들로 가득 있다는 믿음이다. 역사적으로 믿음은 갈릴레이의 망원경을 통해 우리의 시선에 보여지는 세계와 시각적 도구를 통해 보여지는 세계 사이에 차이가 있음이 의식되고, 그를통해 모든 자연현상들의 가시성에 근거해 있던 전통적 자연관 대신 인간의 감각기관으로 포착되지 않는 비가시적 존재들이 본질을 이루고 있는 새로운 자연관의 가능성을 열어놓음[vii]으로써 생겨난 것이다.

 

우리 눈에 관찰될 있는 천체들로만 우주가 이루어져있다고 믿었던 갈릴레이 이전 시대와는 달리 우리는 하늘엔 거의 무한한 별들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하늘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별들은 그러나 망원경을 통해, 그보다 성능이 뛰어난 초광학 망원경이라면 , 그리고 많이 보여질것이다. 우리는 우리 눈에는 아무 것도 없어 보이는 공기에, 손과 발에, 물건과 웅덩이 등에 수많은 미생물과 박테리아 들이 떠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을 믿는다(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과 병원균들은 우리가 사용하는 현미경의 배율이 높을수록 많이 보일것이다. 시각적 도구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세계는 이처럼 도구의 성능에 비례해 늘어난다.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이게해주는 새로운 시각적 도구와 테크닉이 발전할 수록 우리는, 우리 눈엔 보이지 않는 많은 존재들을 감지하고, „의식 나가게 것이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새로운 시각적 도구들을 통해 비로소 생겨나게 이러한 믿음이 이전의 주술적이고, 종교적 세계관으로부터 우릴 계몽시키고 벗어나게 하기보다는 엉뚱하게도 오히려 그를 강화시키는 방향으로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망원경, 현미경, 나아가 이후 개발된 시각적 도구와 매체들이 우리를, 세상이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것들보다 훨씬 많은 비가시적인 것들로 채워져있다고 확신시킬수록 그에 비례해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우리의 불안은 커진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병원균, 공기 중에 섞여있는 공해물질, 우리 몸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전자파, 우리가 감지하지 못한 채 섭취하는 해로운 화학물질 등이 우리를 병들고 죽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의식하고 살아가는 우리들은 어쩌면, 눈에 보이지 않는 악마와 신의 저주를 걱정하면서도 자연에 대해서 만큼은 눈에 보이는 확실한 것들로만 이루어진 세계 속에서 살았던 중세인들보다 더 낙관적이지도, 그렇다고 더 합리적이지도 못하다.

 

시각적 무의식das Optisch-Unbewußte[viii]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이게 줌으로써 그들의 존재를 감지하고 의식하게 하는 이런 도구에는 망원경, 현미경 등의 시각적 관찰 도구만 포함되지 않는다. 거기엔 예를들어 사진, 영상과 같은 기술적 복제매체들도 해당된다. 어떠한 의미에서 사진, 영상과 같은 시각매체들이 망원경이나 현미경처럼 가시적이던 대상들을 가시화시켜 준다고 말할 있는 것일까.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서 발터 벤야민은 사진, 영상과 같은 당시의 새로운 기술적 복제 매체들이 어떻게 세계에 대한 우리의 지각방식을 변화시켰는지를 분석하면서 시각적 무의식das Optisch-Unbewußte“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그에 따르면 프로이드의 <일상생활의 정신병리Psychopathologie des Alltagslebens >[ix] 우리가 경험하고 있었지만 감지하지 못하고 지나쳐버린 일상 생활의 사소한 실수들 누군가의 이름 이나 특정 단어의 망각, 실수, 오독, 의도와는 다른 행동 주목, 거기서 발현하는 무의식을 분석해 의식할 있게 주었듯이, 사진이나 영상과 같은 시각 매체들은 우리가 평소에 보고는 있었지만 감지하지 못했던 대상의 모습들을 찍어 분석 가능하게 함으로써 그를 의식할 있게 해준다. [x] 예를들어 벤야민이 언급하고 있는 클로즈업 Nahaufnahme이나 슬로우 모션 Zeitlupe같은 영상기법은 대상을 공간적으로 확대해서 보여주거나(클로즈업), 움직임을 시간적으로 확장시켜 보여줌(슬로우 모션)으로써 우리가 평소 알고 있던 대상들에서 지금껏 우리가 감지하지 못하던 어떤 측면과 모습들을 의식하게 해준다. 이처럼 우리가 보고 있었지만 그를 감지하고 의식하지 못함으로써 사실상 우리에게 보이지 않던대상 혹은 현상들을 벤야민은 정신 분석학의 용어를 빌어시각적 무의식das Optisch-Unbewußte“이라고 칭하는 것이다.

 

어떻게 사진이, 우리가 보고 있었지만 우리에게 보이지 않던 이러한 시각적 무의식 의식하게 있는가를 가장 예시해 주는 하나가 1878 영국 사진사 Eadweard Muybridge 찍은 유명한 달리는 말의 연쇄 사진이다. 달리는 말을 무수하게 보아왔지만 우리는 그전까지는 달리는 말의 발이 모두 완전히 허공에 있는 순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감지하고 의식하지 못했다. 사진은 우리가 보아 왔으나 보지 못하고 있던 시각적 무의식  분명하게 부각시켜 보여줌으로써 그를 의식하게 주었다.  

 

 

사진과 영상이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 (시각적 무의식) 시각화시켜 의식하게 해주는 효과를 갖는다면 우리는 이를 위에서 이야기했던 현미경이나 망원경과 같은 광학적 도구에도 거꾸로 적용시켜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현미경이나 망원경을 통해 비로소 보이게 되는 대상들 역시 사실 알고보면 우리가 우리의 자연적 시선을 통해 보고있었지만 감지하지 못하던 대상, 시각적 무의식이었기 때문이다. 눈으로 달을 바라볼 우리의 시선 속에는 사실상 달의 울퉁 불퉁한 표면이 이미 들어와 있지만, 그건 우리에 의해 의식되고 감지되지 못한 시각적 무의식이다. 하늘을 바라보는 우리는 사실상 하늘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는 별들을 함께 보고있지만, 천체 망원경을 사용하지 않는 그것들은 우리에게 감지되고 의식되지 않은 시각적 무의식으로 남아있다. 손과 , 땅바닥과 웅덩이를 보고있는 나는 속에서 살아 꿈틀거리고 있지만 나에 의해 시각적으로 의식되지 못한미생물, 세균, 박테리아 등을 사실상 이미 함께 보고있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망원경이나 현미경 같은 시각적 도구들이 하는 일이란, 사진이나 영상과 마찬가지로, 이런 시각적 무의식들을 가시화시켜 우리로 하여금 그를 감지하고 의식하게 해주는 것이다

 

 심령 사진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과 시각적 매체를 통해 보이는 사이의 이러한 관계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변증법에 대한 하나의 관점을 열어준다. 세상이 눈으로 바라 보지만 감지하고 의식하지 못하는 시각적 무의식으로 가득차 있고, 그래서 마치 프로이드에게서 인간의 의식이 그를 규정하는 거대한 무의식의 의식된 부분에 지나지 않듯이 - 우리가 눈으로 보고 의식하는 것들이란 결국 거대한 시각적 무의식의 극히 미미한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우리가 보고 있다고 믿는 것들 속에는 사실상 우리가 보고 있지 못한 많은 것들이 자리잡고 있다는 생각은 어렵지 않게 세계에 대한 신비주의적이고 주술적 세계관[xi]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시각 매체에 대한 근대적 믿음이 탄생시킨 역설적 문화현상 하나를 살펴보는 것은 흥미로울 것이다. 소위 심령 사진이라고 불리는 사진들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진들이 인위적으로 조작된 것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사람들로 하여금 이런 사진들을 인위적으로까지 만들어 내게하는 사진들이 갖는 어떤 효과들이다. 사진들이 우리에게 운하임리히Unheimlich“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면, 그건 사진이라는 시각 매체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 ‚시각적 무의식’! - 을 포착해 시각화시켜 준다고 하는 우리의 근대적믿음이 귀신이나 영혼에 대한 우리의 오랜 주술적믿음과 결합해 생겨난 것이다. , 망원경과 현미경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천체와 미생물 등을 보이게 해 주듯 사진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계를 가득 채우고 있을 귀신과 영혼들을 포착해 보이게 해 준다는.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가시화된 저 보이지 않던 영혼들은 그래서, 갈릴레이의 망원경이 그 시대 사람들에게 가시화시켜준 보이지 않던 달 표면의 거친 웅덩이와 동일한 시각적 지위를 갖는다. 이 심령사진들은 갈릴레이가 망원경을 통해 들여다 본 달의 모습이 동시대인들에게 제기했었던 동일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여기에 드러난 것을 이 세계의 진짜 모습으로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카메라라는 믿지못할 시각적 도구가 우연히 만들어내거나 조작한 것이라고 거절할 것인지



[i] Galileo Galilei : Sidereus Nuncius. Nachricht von neunen Sternen, FaM 2002, S.83.

[ii] Galileo Galilei : Sidereus Nuncius. Nachricht von neunen Sternen, FaM 2002, S.84.

[iii] Galileo Galilei : Sidereus Nuncius. Nachricht von neunen Sternen, FaM 2002, S.84.

[iv] Galileo Galilei : Sidereus Nuncius. Nachricht von neunen Sternen, FaM 2002, S.85.

[v] 인간의 자연적 (감각) 능력을 넘어서 대상을 관찰 하게 해주는 망원경, 현미경 등의 시각적 도구들이 그에 대한 회의와 불신을 극복하고 자연 과학적 실험에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이후에서야 이루어진다. Wolf Lepenies : Das Ende der Naturgeschichte. Wandel kultureller Selbstverständlichkeit in den Wissenschaften des 18. und 19. Jahrhunderts, München & Wien, 1976, S. 17.

[vi] 이러한 자명한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시각적 도구들이 대상의 모습을 왜곡, 변형, 나아가 악의적으로 조작 Manipulation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한다. 황우석 사태가 가능할 있었던 것도 바로 믿음에 기인하고 있다.

[vii] Vgl. Hans Blumenberg : Das Fernrohr und die Ohnmacht der Wahrheit, in  Galileo Galilei : Sidereus Nuncius. Nachricht von neunen Sternen, FaM 2002, S.15ff.

[viii]무의식이라고 번역되는 das Unbewußtseindas Unbewußte 관계는 Sein Seiende 관계처럼 서로 구별되는 단어다. ‚무의식 의식 상응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das Unbewußte 의식된 상응한다. 어떤 식으로든 (비의식적 감각을 통해, 혹은 본능적 욕구에 의해)주체에게 주어져 있으나 의식적으로 포착되지 못한 , 의식되지 못한 이다. 따라서 das Optisch-Unbewußte 엄밀히 말해 시각적으로 의식되지 못한 이라고 번역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선 글의 리듬을 고려해 편의상 시각적 무의식이라고 쓴다. 

[ix]  벤야민이 언급하고 있는 프로이드의 책의 원래 제목은 사실  <일상생활의 정신병리에 대하여Zur Psychopathologie des Alltagslebens >이다. Sigmund Freud :Zur Psychopathologie des Alltagslebens, 1904.

[x] W. Benjamin :  GS. Bd. I-2. S. 498.

[xi] 나는 발터 벤야민의 사상이 이러한 의미에서의 근대적 세계관과 맥을 닿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각적 무의식  위시, 그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는 아우라, 변증법적 형상 Bild, 알레고리, 기억 등의 개념들 속에서 우리는 그의 사상이 기반하고 있는 기호론적 pansemiotisch 사유를 감지할 있다. 이에 대한 논의는 다른 기회로 미룬다.

 

출처 : 비평고원(Critical Plateaux)
글쓴이 : 김남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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