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찬묵의 <K-뮤지컬>을 어제 저녁 하루만에 읽었다. 꽤 오랜 시간에 걸쳐, 일을 하면서 쓴 글이라 일부분에서는 동일한 사안에 대해 서로 다르거나, 정리되지 않은 입장과 관점들이 눈에 뜨였다. 그래도 술술 읽히는 짧은 문장, 잘 알지 못했던 ‘한국의 뮤지컬’ 세계에 대해 많은 걸 알려준다. 무엇보다 ‘뮤지컬’이라는 용어부터 문제다. 국내에서는 ‘뮤지컬’이 하나의 독립적인 ‘장르’로 언급되고 연극 등과 구별되어 사용되지만 미국/영국에서 뮤지컬은 ‘연극’으로 분류된다. 오페라와의 차이는 근본적으로 뮤지컬의 대중성과 상업성에서 기인한다. 모두가 뉴욕 브로드웨이를 뮤지컬의 뿌리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실제로 뮤지컬을 오늘날처럼 성장시키게 한 것은 웨스트 앤드, 곧 영국의 뮤지컬 – 캣츠나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 이다. 한국에서는 일제 강점기부터 전해오는 ‘악극’이 있고, 판소리에 기반한 ‘창극’, 나아가 ‘마당놀이’라 칭해진 종합예술 장르가 있어왔지만, 이것들은 ‘뮤지컬’이라는 범주로 함께 묶이거나 연결되지 않는다. 그건 ‘뮤지컬’이라는 명칭이 기본적으로 ‘외국에서 온’ 명품 공연이라는 관념과 깊이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어릴 적 보았던 <피터팬>과 같은 뮤지컬 – 윤복희가 주연한 –처럼, 국내에서도 60년대 뮤지컬의 시도들이 있어왔다. <지하철1호선> 같은 것이 대표적인데, 현대 뮤지컬은 이런 역사와도 연결되어 있지 않다. 이 책을 읽고 유트부에 올라와있는 ‘국립창극단’의 공연 영상을 보았다. 리어왕을 창극으로 만든 것인데 나쁘지 않았다. 연기외의 노래 부분을 ‘판소리’로 진행한다는 컨셉이 새로웠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뮤지컬의 경제적 측면이었다. 브로드웨이에서처럼 그 작품의 흥행에 연동되어 공연기간이나 입장료를 올리거나 내리는 시스템이, 제작비가 많이 드는 뮤지컬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 필요해보이나 국내에는 여러 가지 조건상 그를 도입하기가 힘들다. 무엇보다 그를 위해서는 공연을 유동적으로 연장하거나 축소할 수 있는 공연장 스케쥴 등의 시스템이 갖추어져야 하고, 나아가 뮤지컬 제작비 중 출연료의 비율이 지금보다 줄어들어야 한다. 뮤지컬의 성공이 주로 스타 배우의 출연에 의존되어 있다면 이런 시스템은 불가능하다. 국내 뮤지컬 관객층이 확장되기 보다는 덕후 층으로 결집되고 있다는 사정도 뮤지컬 시스템의 발전에는 장애조건으로 작용한다. ‘회전문 관객’곧, 한 공연을 여러차례 보는 그 극성관객들에 뮤지컬의 운영이 의존되어 있는 한, 새로운 형식을 실험해보기는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관객들이 ‘작품’보다는 거기 등장하는 ‘배우’를 보려고 한다면 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