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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 <문화방위론>

김남시 2023. 7. 30. 10:40

 연구실 책을 정리하다 사 놓고서 읽지 않은 수많은 책들을 처리했다. 읽지 않았지만 앞으로도 읽지 않을 것 같은 책은 기증이나 판매할 책 무더기로 보내고, 그래도 읽어볼 여지가 있다고 여겨지는 책들은 책장에 정리했다. 읽어봐야겠다고 분류된 책 중 미시마 유키오의 <문화방위론>이 있었다. 충분히 한국어화되지 않은 번역투가 계속 거슬리나, 몇몇 일본 작가들의 책에서 느껴지는 급진성이 날 끌었다.

 

그의 반혁명 선언은 무엇보다 공산주의/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급진적 비판을 담고 있다. 공산주의의 인터내셔널리즘이 더 좋은 미래 사회를 내세우며 파괴, 해체, 전복하려고 하는 자국[일본]의 문화, 역사, 전통을 지키려 한다는 점에서 그는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입장이다. 하지만 그 보수성은 파리가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를 적의 손에 넘겨준 페탱류의 문화주의와는 근본적으로 구별된다. ”문화주의는 문화를 그 피범벅인 모태의 생명이나 생식기관에서 잘라내, 어떤 경사스러운 인간주의적 성과로 판단하려는 하나의 경향“(35)이다. 과거로부터 온 것이라면 그 어떤 것도 유해할 수 없게 된’, 문화를 작품으로서 사물로서 감상하는 관대한 수용자의 예술지상주의에 다름 아닌 문화주의는 문화를 어딘가 무해하고 아름다운 인류의 공동재산이며 광장의 분수 같은 것으로 여긴다. 이런 문화주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심지어 나라를 적국에 넘겨주어서라도 사물로서의 문화를 보존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과거의 전란과 화재 등을 생각하면 현재 남아있는 사물로서의 문화란 우연적인 것이며, 그것도 과거의 것들 중 양질의 것만남아있다고 확신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유키오가, ”민중의 비난, 원망, 매도까지 감수하면서도“, 심지어 경우에 따라서는 인민 재판적인 공격을 받고 민중에 맞아죽을지도 모를 것을 감수하는 전위로서의 반혁명을 통해 지키고자 하는 우리의 역사, 문화, 전통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으로 나아가기 전에 유키오의 반혁명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의 반혁명은 단지 사회주의적 혁명에 대한 반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건 사회주의/공산주의자들의 혁명이 출발점으로 삼는 사회의 무정형화, 앵포르멜화에 대한 거부에 기초한다. 근대 이후 대중 사회화는 우리가 소속되어 있는 소집단, 그 속에서만 자신들 존재의 근본을 확보할 수 있다고 감각적으로 느끼는“(19) 소집단들과 사회 사이의 불균형을 초래했다. 근대 대중사회는 소집단들 사이의 갈등과 대립, 특정 소집단이 다수가 됨으로써 생겨나는 소외를 유발하였다. 이로부터 사회는 우리에 대해 적인가 아군인가, 사회를 국가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직결시킬 것인가, 우리의 소집단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회적 현상을 모두 국가 권력의 자동화된 움직임에 좌우된 것이라고 생각할 것인가“(20) 등의 어려운 질문을 초래했다. 이 문제에 대해 혁명 세력은 처음에 소외 문제로 출발했지만 그렇게 이용된 소외가 소집단 속의 다수자가 되고, 소집단 속의 대다수와 연대해 사회 속의 대다수를 확보한 뒤 그 대다수가 쉽게 폭력과 행동으로 전환해 현 체제의 전복과 파괴에 도달한다는 혁명계획을 통해 해결의 암시를 재촉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상 해결이 아니라 모든 것이 다 사회의 책임이라는 식으로 책임의 소재를 융해시켜 버리는 무책임의 체계’“이며, 그를 통해 사회의 무정형, 앵포르멜화를 강화한다.

 

인간은 소외로부터 스스로 도망치고 싶어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 욕구의 가장 알기 쉬운 슬로건은 자유이지만,..자유를 부여받은 후에 다시 자유로부터 도망가려 하는, 일종의 도피 메커니즘은 자동적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도피 메커니즘이 자동적으로 진행될 때 소외된 소수자는 어느새 다수 집단자가 되고, 다수 집단자는 대다수가 되어 권력을 추구해, 마침내는 소수자를 유린하게 되는데, 이때 자신은 스스로 선 곳의 존재 이유를 자기 부정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소소자 집단의 소외에서 출발하고서 결국 자기모순에 빠지고 마는 혁명에 반대해, 반혁명은 소외를 고집하고 소수자 집단의 권리를 고집하려는 것이다. 그것만이 혁명 세력에 대해 반혁명의 입장에 설 수 있고, 그들 다수를 지탱하고 있는 집단행동의 논리적 모순에 대한, 가장 강하고 첨예한 적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시마는 특정한 소집단, 예를들어 프롤레타리아의 입장을 사회 전체의 일반성으로 확장시키려는 와중 소수자를 유린하고 억압하게되는, 혁명이 봉착할 수 밖에 없는 모순을 지적한다. 이런 아나키즘적 사고에 기반한 반혁명은 소수자 집단의 권리를 고집하고 소외를 고집하면서 전체를 독점하려는 혁명의 전체주의에 맞서 문화의 전체성을 지향한다. 이 점에서 유키오에게 문화는 근본적으로 이질적인 소수자들의 혼종성으로 구성된 전체이며 정치의 핵심과제는 그러한 문화의 전체성을 유지하고 보장하는 것이다. 그를 위해서는 언론의 자유가 중요한 이유다. ”좌파 우파의 전체주의 문화 정책은 문화주의와 민족주의의 가면을 교묘하게 뒤집어 쓰면서 문화 자체의 전체성을 적대시하고, 늘 전체성의 삭감 쪽으로 향하는 것이다. 언론의 자유를 탄압하는 심리적 근거는 모든 전체성에 대한 전체주의의 질투에 다름 아니다. 왜냐하면 전체주의는 전체의 독점을 본질로 하기 때문이다.“

 

모든 소수자 집단의 권리주장을 포괄하는 문화의 무차별 포괄성이 중요한 이유는, 그래야만 문화를 지킨다는 것이 온전하게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시마에 의하면, ‘지킨다는 것은 재귀적이다. 지키는 쪽의 이상성과 지켜져야 하는 쪽의 존재해야 할 모습에 동일화의 기연이 없으면 안된다. 한발 더 나아가 지키는 쪽의 지켜져야 하는 쪽에 대한 동일화가 최종적으로 성취될 가능성이 없으면 안된다.“ 만일 지켜야 할 대상이 박물관의 몇백캐럿짜리 다이아몬드처럼 완벽하고 수동적이며, 생명의 발전 가능성과 주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를 지키는 행위는 파리가 독일에 항복한 것처럼 최종적으로는 패배주의나 지켜야 할 것의 파괴로 끝날 것이다. 무정형화된 근대사회가 문화유산으로 제시하는 사물로서의 문화, 그를 지키려는 쪽의 이상성과 동일화되기 어렵다. 이와는 달리 자신의 소외와 권리를 주창하는 소수자 집단이, 바로 그 집단을 위해 중요한 무엇인가를 지키고자 할 때 비로소 문화의 재귀성이 작동한다. 그를 지키려는그들의 행위 자체가 그들의 문화와 그 문화의 창조적 주체를 형성하고 만들어낼 것이기 때문이다.

 

문화의 첫 번째 적은 언론의 자유를 마지막까지 보장하지 않는 정치체제. 자신의 권리와 소외를 주장하는 모든 소집단을 포괄하는 문화의 전체성이 그럼에도 동일한 공동체 내에서 보장되기 위해서는 각 소집단들의 개별성 전체를 포괄하는 문화공동체 이념이 요구되며, 미시마에게 천황은 그를 위한 필수적인 개념이다.

미시마는 아나키스트다. 그는 사회에 의해 소집단의 권리와 소외가 평준화되는 사회적 구조에 반대한다. 그런데 이러한 문화의 전체성이 적어도 문화공동체내에서 유지되기 위해서는 이 서로 다른 소집단들을 연결시켜주는 매개체가 필수적이며, 일본의 경우 그것이 천황이다.

 

미시마 이론의 중요한 관점 하나는 그가 약자의 정치를 혐오한다는 것이다. ‘소수자를 말한다고 해서 미시마가 약한 소수자를 보호하는 것이 정의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가 반혁명을 외치는 이유는 혁명이 그런 약자의 정치를 내세우기 때문이다.

 

우리는 전후 혁명 사상이 약자의 집단원리에 의해 움직여온 것을 통찰했다. 아무리 폭력적 표현을 취하더라도, 그것은 집단과 조직의 원리를 떠날 수 없는 약자의 사상이다. 불안, 회의, 혐오, 질투를 유포하고 이를 통곡의 재료로 사용하며, 이들 약자의 밑바닥에 있는 생각을 공통항으로 삼아 일정의 정치목적을 지향하는 집단운동이다. 공허하게 관념적이고 달콤한 사상의 미명을 내거는 한편, 가장 낮은 약자의 생각을 기초로 연결시켜 과반수를 획득한 뒤 각 소집단 소사회를 민주적으로지배함으로써 소수자를 압박해 사회 각 분야로 침투해온 것이 그들의 수법이다. 우리는 강자의 입장을 취하고 소수에서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