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민주주의의 위기

김남시 2014. 3. 17. 00:45

Wendy Brown 교수의 글 Wir sind jetzt alle Demokraten...을 읽었다. ‘민주주의의 위기’를 우려하든, 혹은 ‘민주주의의 공허함’을 외치든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현실인식이 무엇이었는지를 명확하게 알려준 멋진 글이다.

민주주의 Demos + Kratie, 곧 ‘민중의 지배’라고 하는 민주주의의 개념은, 민중이 자기 자신을 통치하며 그 민중 전체가 주권자라고 하는 단순하고 순수한 정치적 요구만을 함축하며, 민주의 지배가 행사되기 위해서는 어떤 권력/폭력이 어떻게 분배되고 조직되어야 하는지, 어떤 기구들이 확보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열려있는 개념이다. 다시말해 공동체가 공동체를 스스로 통치한다고 하는 이념. 그런데, 이러한 민주주의의 이념 자체가 흔들리는 일련의 상황들이 생겨나고 있다. 첫째 기업의 권력과 국가 권력의 유착이 점점더 강해진다. 국가의 세금, 환경, 에너지, 노동, 사회, 경제정책들이 거대 그룹이나 자본을 구제하거나 지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일반 대중들은 이러한 과정을 그저 수동적으로 지켜보고만 있다.
둘째, 그나마 남아있는 민주주의의 제도적 상징인 ‘선거’마저 마케팅과 매니지먼트의 써커스가 되었다. 정치적 삶은 점점 더 매체와 시장경제의 성과로 환원되고, 정치적 전략과 프로그램들은 일종의 소비재처럼 판매되고 있다.
셋째, ‘정치적 합리성’이라는 이름으로 신자유주의가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근본적 가치들을 허물고 있다. 법 앞에서의 평등, 정치적 시민적 자유, 정치적 자율성과 보편성은 비용-효율-관계, 수익성, 효과 등의 시장 경제적 기준으로 대체되었다. 모든 시민들, 공동체, 아카데미를 기업의 척도에 따라 평가하는 신자유주의는, 민중의 자기 자신의 지배와는 무관한 “시장 민주주의”의 지배를 초래하였다.
넷째, 행정권력 Exekutivgewalt 이 확장되고 법원 Gerichtshöfe 의 힘과 포괄범위가 증가하였다. (60) 글로벌 테러리즘에 대항한다는 명분으로 행정권력이 시민들에 대한 지배 범위를 확장시킨 것 뿐 아니라,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도 법원이, 무엇이 금지되어 있는가 뿐 아니라 무엇이 행해져야 하는가까지 결정하는 권력으로 부상하였다. 이를 통해 고전적 삼권분립의 범위를 넘어서 행정적 legislative 기능까지 침탈하게 되었다. 곧, 대의적이지않은 기구가 공공적으로 권력을 얻고 정치화된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최근 국내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변화들을 평가할 수 있겠다. 국정원처럼 ‘대의적’이지 않은 기구가 권력을 획득해가고, 국회와 같은 행정부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대통령이 국민에 의해 선출되었다는 사실만에 의거해 대통령의 행정 권력을 강화시키는 것!)
다섯째, 저자는 신자유주의적 합리성이 나아가 세계화를 통해 일국의 주권권력을 심대하게 위축시키고 있음을 탈민주주의화의 중요한 요소로 꼽는다. 실지로 신자유주의적 질서에 따라 재편되는 국제 경제적 관계가 일국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와 정도는 점점 강해지고 있다. (이는 쌍용 자동차의 경우가 대변한다! 일국적 주권권력 자체를 위축시키는 글로벌한 신자유주의적 흐름에, 예를 들면 노무현 정부부터 굴복하기 시작했다. 일국적 주권의 상실은 곧바로 국민주권의 심대한 위축과 상실이 된다.)

민주주의의 이념 - “공동체의 공동체에 대한 지배” - 자체에는, 웬디 브라운에 의하면, 이미 그동안 현실 민주주의의 실천적 역사 속에서는 실현되지 못했던 정치적 잠재성이 내재되어 있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파라독스’다. 고대 아테네의 민주주의에서는 여자, 노예와 외국인은 결정에 참여하지 못하고 배제되어 있었고, 그 이후 모든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특정한 이민자, 식민지 또는 외국인 그룹들은 정치 참여에서 배제되어 왔다.이러한 방식으로 “민주주의에는 늘 언제나 공공연한 반보편주의 Antiuniversalismus가 내재되어 있다.”(64) 그렇기에 민주주의의 보편화라는 꿈이 실현된다면 그것은 이러한 민주주의의 형태를 넘어서게 될 것이다.

근대 민주주의 이념이 전제하는 ‘자유로운 주체’에 대해서도 여전히 해명이 종결되지 않았다. ‘자기통치 Selbstregierung, 자기입법’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어떤 힘과 기구, 제도들을 갖추어야 하는가? 한편으로는 대의제도를, 다른 한편으로는 개인적 활동에 대한 국가적 개입의 제한을, 국가기구의 집합적 소유를 그러한 자유의 전제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 근본적인 핵심질문은 이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빵보다 자유를 원하고 있는가”(68)라는 질문이다. 오늘날 민중들이 민주주의적 자유를 원하는가, 자기 자신들에 대한 자율적 통치를 지향하는가?
‘민주주의’의 이념은 여전히 그 힘을 발휘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