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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영역/세속적, 일상적 영역

김남시 2014. 3. 17. 00:21

“내가 볼 때 벤야민의 사고 세계는 빛을 발하는 도덕적 아우라를 갖고 있었다. 내가 입장을 바꿔 이해할 수 있는 한, 그 세계는 어떤 고유한 도덕성을 지녔고, 이 도덕성은 당시 아주 분명하게 그의 사상의 끝이 닿아있던 종교적 영역과 그 세계 사이의 관계와 연관이 있었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일상생활에 대한 벤야민의 태도 속에는 어떤 완고한 도덕적 무관심의 요소가 있었다. 그가 이러한 요소를 시민적인 것에 대한 경멸로서 정당화할지라도 나로서는 용인할 수 없었다....그의 주위에는 어떤 다른 세계에 빠져 자신의 ‘글’을 찾아가는 율법학자처럼 순수함, 절대성, 정신적인 것에 몰두하는 태도 같은 분위기가 있었다....그의 생활은 그의 사유가 지닌 엄청난 정도의 순수성을 지니지는 못했다....벤야민이 시민세계에 대해 갖는 태도는 거리낌이 없었고, 이러한 태도가 나를 분격시킬 정도였다. 그의 태도는 허무주의적이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주위에 쌓아올린 삶의 영역, 그리고 정신적 세계에서만 도덕적 범주들을 인정하였다.” (숄렘, 한 우정의 역사, 112-114)

숄렘이 정확히 지적하듯, 벤야민에게 일상적인 삶의 영역은 ‘도덕적 무관심’의 영역이었다. 일상적인 삶의 영역에 대해 ‘도덕적 무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그가 비도덕적인 인간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그가 몰두하는 정신적 세계에서 순수하고, 절대적인 도덕성을 세우는 사람일수록, 그 삶의 영역이 갖는 도덕적 가치는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일상의 영역, 세속의 영역은 ‘도덕적’일 수 있는 곳이 아니니까. 그곳에는 ‘도덕성’의 범주가 적용될 수 없는 곳이니까. 세속적, 일상적 영역에 대한 ‘도덕적 무관심’은, 세속적 일상적 영역에 대한 ‘무능력’과 곧바로 관련되어 있다. 그런 사람은 세속적, 일상적 영역에 대해 무능하다. 나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