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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의 "미메시스 능력에 대하여"

김남시 2014. 3. 17. 00:09

벤야민의 <미메시스 능력에 대하여>에는 다음과 같은 독일어 구절이 등장한다.

Nicht unwahrscheinlich, daß die Schnelligkeit des Schreibens und des Lesens die Verschmelzung des Semiotischen und des Mimetischen im Sprachbereiche steigert.

여기에서 밑줄 친 부분을 최성만 선생은 ‘글쓰기와 읽기의 빠른 속도’(벤야민 선집 6, 215쪽)라고 번역하였다. 이는 독일어 단어 ‘schnell’을 염두에 둔 번역어다. 하지만 여기에 사용된 ‘schnell’의 의미가 ‘빠르게’ 쓰기와 읽기를 한다로 굳이 번역될 필요가 있을까. 예를 들어 우리는 안단테, 아다지오, 프레스토 등의 서로 다른 음악의 템포를 통상 ‘빠르기’라는 말로 통칭한다. 프레스토에 비해 아다지오는 매우 ‘느린’ 것인데도 말이다. 알고 보면 이런 식의 언어사용은 꽤 많은데, lux를 빛의 ‘밝기’라고 지칭하고, ‘길이’, ‘높이’, ‘나이’, ‘무게’ 등으로 각각의 것들을 지칭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본다면 이 문장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소리내어 읽거나 쓸때의 '빠르기'가 언어영역에 있어서의 기호학적인 것과 미메시스적인 것의 융합을 증가시킨다는 것이다. 어떤 텍스트를 소리내어 읽다가, 어떤 적정한 속도가 되었을때 그 언어의 의미와 그 소리의 울림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경험이 있지 않은가. 펜을 잡고 글을 쓰다가 어느 순간, 내가 쓰고 있는 단어의 의미와 그 단어의 형상이 기막히게도 들어맞는 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지 않은가.